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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발사는 한때 외과의사
김동유의 인생 담은 <그림꽃, 눈물밥>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이발소. 과거 이발소는 부자간에 추억을 나눌 수 있던 공간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나선형 이발소 간판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잔재다. 이발사의 화려하나 손놀림까지도. <그림꽃, 눈물밥>(비채.2012)에 이발소에 관한 유래가 실려 소개한다.

<포스트 잇> 원래 이발사는 유럽에서 생긴 신종 직업이었다고 한다. 18세기까지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도 겸하였다고 하니 요즘 말하는 ‘투잡’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이발소에 가서 치료를 받고, 응급처지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피를 빼야 낫는다는 이상한 건강법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외과의사이기도 한 이발사는 건강을 위해 사람 몸에서 피를 빼는 치료 행위를 거의 도맡아 했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던 가위손 이발사와는 너무나 다른 그림이다.

이발사가 입구에 걸어놓은 등은 전문적으로 피를 빼는 기술을 습득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헨리 8세 치하의 영국에서 당시 ‘이발외과의사’로 불리던 이발사들이 둥근 기둥에 파랑, 빨강, 하양의 색깔을 칠해 입구에 내걸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이발소의 표시가 된 것이다.

파란색은 정맥, 빨간색은 동맥, 하얀색은 붕대를 의미했다고 하니 이발소의 등 하나에고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깃든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발사가 등장한 것은 신문화를 받아들이라는 단발령이 내려진 시점인 1895년 이후부터였다. -136쪽~138쪽 중에서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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