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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힐링 하우스’신한옥 <6>모듈화·표준화로 ‘인공미 NO’, ‘자연미 UP’
근래 들어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인 한옥의 현대화 및 활성화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일부 민간업체 주도로 신한옥(일종의 개량한옥, 퓨전한옥) 개발 사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기와)한옥은 친환경성과 건강성, 전통의 멋, 자연과의 조화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단점 또한 만만찮다. 특히 높은 현장작업 비율 및 수작업으로 인해 건축비가 높고 유지관리가 어려워 일부 부유층의 보금자리로만 머물러왔다. 또한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아 불편한 데다 기밀 단열 등의 주거 성능이 떨어지고, 화재 방범 등 안전에도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정부가 나서서 용역발주를 통해 전통한옥의 멋을 유지하면서 21세기 주거환경을 반영한 모듈을 개발하고 성능을 개선하며 건축비가 저렴한 친환경 한옥(이를 정부는 신한옥이라고 부른다)을 개발, 보급키로 한 것이다. 전통의 멋과 현대의 기능이 어우러진 저렴한 신한옥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듈화·표준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건축비를 전통한옥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반값 한옥’이다.

 
국산 통나무와 황토, 너와로 지은 서민 신한옥의 모습. 기계로 통나무를 정밀하게 가공해 통나무와 통나무가 맞물리는 부분에서 틈새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했다.

이를 위한 과제로는 한옥에 사용되는 목부재의 가공기계를 개발하고 대량생산 할 수 있는 라인을 구축한다. 대량생산 가공시스템은 기존의 CAD(컴퓨터 이용 설계, computer-aided design)·CAM(컴퓨터 이용 제조, computer aided manufacturing) 기술을 분석하여 시각화하며, 한옥의 주요 구조부를 모듈화·표준화하여 공기를 단축시킨다. 또한 보다 체계적인 설계와 구조시스템을 통해 한옥 시공 시스템을 개발한다.

정부가 추진중인 신한옥 기술 개발은 전통 한옥의 다양한 가치와 우수성을 계승하되,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다양한 한옥모델 및 설계기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친환경 생태기술을 결합한 쾌적한 한옥기술 개발을 위해 부위별로 성능이 향상된 재료 및 제품을 개발한다. 아울러 에너지 효율성도 획기적으로 높인다.

#반값 한옥은 무늬만 한옥?…자연미·친환경성 되레 후퇴

정부와 일부 민간업체에서 개발 중이거나 선보이고 있는 ‘반값 신한옥’은 그러나 전통의 멋과 친환경성을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는 취지에서 되레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물론 반값 한옥은 전통 한옥의 멋을 살리면서 내부는 아파트처럼 주방과 화장실을 설치해 불편함을 줄였다고 자랑한다. 창문은 한지 대신 유리를 써 단열성을 높였고 대들보와 기둥은 원목 대신 완전 건조된 접합목재(집성목)를 사용해 습기에 의한 뒤틀림을 차단했다. 잘 깨지고 무거운 기와는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무게를 크게 줄였다. 각종 건축 재료를 모듈화해서 공장에서 생산한 것을 조립만 하면 되기에 공기 단축을 통해 건축비를 전통 한옥의 절반인 3.3㎡(1평)당 600만~700만 원대로 줄였다고 내세운다. 정부가 용역을 줘 개발 중인 반값 한옥은 오는 2013년 서울 은평뉴타운에 150가구 규모의 시범단지가 조성될 예정이기도 하다.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주방과 화장실, 창호 등을 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기계화·모듈화·표준화로 건축 재료를 대량생산하고 공기를 단축해 건축비를 낮추는 것 또한 올바른 방향이다. 한옥이 단지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살기에 좋은 집’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통 한옥의 멋과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목이 아닌 집성목과 강화 플라스틱 기와, 황토벽이 아닌 석고보드 벽체 등은 전통한옥의 자연미와 친환경성, 건강한 집과는 사실 거리가 좀 멀다. 외양만 전통 한옥을 흉내 낸 인공미일 뿐이다. 진정한 한옥의 전통미는 자연미다. 그 자연미는 바로 원목 기둥과 보, 그리고 황토 벽체에서 우러나온다. 

천연재료인 너와로 지붕을 마감했다. 벽체에 사용된 통나무도 옹이와 굴곡을 그대로 살려내 자연미가 돋보인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한옥은 가장 오래된 조립식 건축양식의 하나다. 손으로 하나하나 목재를 다듬어 한옥 부재들을 만들고, 이들을 조립하여 집을 만들어왔다. 반값 신한옥은 이렇게 전통적으로 수작업에만 의존해야 했던 한옥 부재들을 모듈화한다.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던 한옥 부재들을 표준 모델화하여 기계화 시스템에 따라 생산함으로써 한옥을 건축하는데 들었던 시간 및 노동력을 절반가량 줄여 건축비를 반값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반값 신한옥 관계자들은 서양인들의 건축 목표가 편리함이라면 우리의 한옥은 건강함을 추구하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또한 반값 신한옥은 건축비는 절반으로 줄이고 주택성능은 아파트 수준으로 높이자는 한옥 대중화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신한옥은 3.3㎡(1평)당 1200만~1400만 원대인 전통 한옥의 건축비를 절반인 600만~700만 원대로 줄이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됐다. 한옥의 장점인 대류, 통풍, 채광, 습도조절 등을 살리면서 편리성을 갖춘 아파트의 장점을 대거 접목시켰다. 이렇다 보니 기존의 원목 대신 작은 나무를 이어붙인 집성목을 사용한다. 전통한식 기와도 가격이 싼 슬레이트 기와나 화산재 기와, 또는 플라스틱 기와로 대체한다. 서까래는 원목이 아닌 각재(긴 원목을 쪼개놓은 재목)로 한다. 신한옥의 벽체 또한 흙 대신 건식 석고보드와 단열재를 사용한다.

물론 한옥은 문화재가 아니라 그냥 집이다. 살기에 좋은 집이어야지, 보기에만 좋은 집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통나무와 황토로 짓는 서민 신한옥 역시 살기에 좋은 집을 지향한다. 그래서 아파트처럼 편리한 주거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식 건물의 기초 및 내부 구조 설계, 창호 등을 채택한다. 이 부분은 퓨전한옥, 개량한옥과 거의 비슷하다.

#서민 신한옥은 전통 한옥의 멋과 맛을 그대로 계승

그렇다 하더라도 서민 신한옥은 한옥이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바로 전통 한옥의 최대 장점인 자연미와 친환경성(건강) 이다. 그래서 서민 신한옥은 나무(원목)와 흙(황토)을 주재료로 고집한다. 살아 숨 쉬는 건강한 집은 이 두 축이 지탱될 때야 비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순간 살아 숨 쉬는 건강한 집은 사라지고 ‘무늬만 한옥’이 남게 된다.

서민 신한옥은 기계화를 통한 모듈화·표준화를 지향하되, 어디까지나 원목의 자연미와 곡선미를 그대로 살려내고, 나무와 황토의 건강기능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원목이 원구(나무의 밑동)와 말구(나무의 맨 위쪽)의 굵기가 크게 달라도, 혹은 그 모양이 구부러지거나 옹이가 많아도, 그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내는 모듈화·표준화다. 정부와 일반 민간업체들이 추구하는 신한옥의 모듈화·표준화와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그래서 서민 신한옥은 모든 가공 기계를 주문 제작해 건축부재를 만든다. 기둥과 보는 통나무 원목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전에 비해 나무는 한 치수 작은 것으로 사용해도 되지만, 구조적으로는 더 단단하다. 사실 이렇게 만들려면 아주 정확한 기계가 있어야 한다.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기둥과 보의 연결 부분과 벽체가 맞닿는 부분은 일정 규격으로 통일시켰다. 표준 규격화한 것. 그래서 목재의 모양이 한쪽을 굵고 한쪽은 가늘어도 상관없다. 연결 부위만 짜 맞추면 나머지는 황토를 활용해 벽체를 완성한다. 이렇게 탄생한 서민 신한옥은 반듯반듯한 수입목재를 사용한 집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전통미가 묻어난다.

통나무의 가운데에 정확하게 단열재가 삽입되도록 하고, 통나무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1㎜ 이내의 오차 범위로 가공 처리한다. 이런 방식으로 집을 짓기에 기밀이 유지되고 시공 때 자르거나 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지붕과 벽체의 모듈을 정확한 수치로 가공을 하고, 모듈의 수는 최소화해서 현장에서는 조립만 한다. 물론 단열재와 충진재도 정확한 기능과 수치여야 한다.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지어진 서민 신한옥은 기계로 목재를 40㎝(일부 60㎝)로 가공 처리한 표준화된 통나무벽돌을 사용했다. 이 통나무벽돌을 각재와 끼워 쌓아올려서 벽체의 골격을 만들고, 볏짚·숯 등을 첨가해 단열성을 보강한 젤리상태의 황토를 충진해서 벽체에 살을 붙인다. 이어 다시 2차로 황토로 벽체를 마감하면 거의 완벽하게 기밀과 단열이 보장된다.

이 서민 신한옥에 사용된 통나무벽돌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무려 5년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이 필요했다. 기존 몰더나 k-2 k-3(프리 커팅기) 등의 가공 기계로는 만들 수 없었다. 미리 4각 제재나 원주가공을 한 반듯반듯한 통나무가 아니라, 굵기가 다른 곡재 원목을 가지고 레고 짜 맞추듯 조립이 가능한 통나무벽돌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홍천 신한옥연구소는 이를 위한 가공기계를 특별 주문 제작했다. 이제 통나무벽돌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다. 이 방식은 원구와 말구가 100㎜ 차이가 나도, 옹이가 많아도, 웬만한 굴곡이 있어도, 일정하게 가공을 할 수가 있다. 거의 모든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본래 나무와 흙은 결합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기계를 통한 정확한 가공이 필요하다. 홍천 신한옥연구소에서는 2년 동안 자연건조를 한 국산 통나무를 벽체가 접합되는 부분만 깊게 일정하게 파내고, 거기에 창틀이나 보가 들어가게 장부구멍을 만들어 준다. 단단한 나무에 정확하게 장부 구멍을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래서 무게 5톤짜리 거대한 장부기를 주문 제작했다. 가공기, 보링기 등도 마찬가지다.

모듈화·표준화를 통해 생산된 국산 목재를 활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 신한옥을 보금자리로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제시되는 반값 한옥은 3.3㎡(1평)당 600만~700만 원 대이지만, 서민 신한옥은 이 보다 더 저렴한 400만 원대에도 가능하다. 기존 전통한옥에 견줘 ‘1/3값’인 셈이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도움말 주신 분:서경석 신한옥연구소장,부동산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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