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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영 감독 “주변에서 말렸지만 안할 수 없었다” (인터뷰)
2012년 최고의 문제작 ‘부러진 화살’로 잘못된 법과 권력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정지영 감독이 이번에는 ‘남영동 1985’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남영동 1985’는 ‘부러진 화살’보다 한 층 더 ‘센’ 영화다. 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고문의 실체를 그대로 담아냈다.

마치 실제로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아프다. 그만큼 정지영 감독은 장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당시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고스란히 전했다. 그래서일까. 개봉 전부터 독재정권 아래 고문의 실체를 낱낱이 밝힌 ‘남영동 1985’에 대한 대중들과 정치계 인사들의 관심은 뜨겁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은 “관객들 역시 실제 고문 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했다.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 고문의 피해자, 가해자로 연기한 배우들 못지않게 힘들었던 사람은 정지영 감독이었다.


“제가 고문을 시키니까 (배우들이) 하는 거죠. 고문하는 걸 구경하고 있는 고통도 대단해요. 여러 분들이 또는 관객 분들이 느낀 것처럼 저도 현장에서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그 고통을요.”

그는 이번 작품에서 ‘부러진 화살’ 속 호흡을 맞춘 박원상을 주인공 김종태로 발탁했다. 박원상은 고문의 피해자인 김종태로 분해 한 인간이 느끼게 되는 박탈감과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정신적 고통을 세밀히 표현했다.

“박원상은 성실하고 노력을 상당히 많이 하는 배우에요. 또 제일 이로운 점이 바로 미남이 아니라는 거죠.(웃음) 미남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연기를 펼칠 수 있어요. ‘부러진 화살’에서 처음 만났지만 이렇게 또 한 작품을 같이 하게 되면서 서로를 믿게 됐죠. ‘남영동 1985’의 주인공을 선택할 때 다른 누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저를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박원상 밖에 없었어요. 박원상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화의 대부분이 고문으로 이뤄지는 만큼 정지영 감독과 박원상의 사인과 호흡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전기고문도 박원상이 처음에 어떤 건지 알아야겠다고 해서 약하게 한 번 해줬습니다. 이게 정말 강하면 어떨지 생각해서 연기를 하라고 했죠. 물고문 하는 장면은 정말 배우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다행인 게 기절 한 번 하지 않아서 너무 고마웠어요.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촬영할 테니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 몸부림을 하라고 했죠.”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박원상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편집할 수도 있었지만 정지영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렸다
“(나체신을) 일부러 안 보여주는 것은 조작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물론 나체신을 볼 때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그렇지만 적어도 한 번은 보여줘야 해요. 그래야 관객들이 고문의 실체에 대해 더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남영동 1985’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영화임에는 확실했다. 때문에 정지영 감독의 지인들은 그를 말리기도 했다.

“제가 잡혀가거나 테러 당하거나 이런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변에서 말린다고 하고 싶은 걸 안할 수는 없잖아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 주변에서 반대한다고 안 하지 않잖아요.”

정지영 감독은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요즘 학생들에게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요즘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안 가르치고 있잖아요. 한 100년 지나야 그 때 역사가 평가되곤 하는데, 그 전에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교육적으로도 필요한 내용이고요. 영화에 나오는 잔인한 폭력성을 아이들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통해 단편적인 폭력을 보고 모방하고 흉내 내잖아요.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뭐, 박원상의 나체신이 나오긴 하지만 이게 외설적인가요? 어렸을 때 다 목욕탕에서 본 것이기도 하고.(웃음) 원래 12세 관람가를 주장했지만, 고문신 이런 것이 너무 잔인하다고 해서 15세에 동의했죠.”

영화가 개봉되는 시기는 대선날짜와도 맞물린다.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을 통해 시대의 지도자가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런 영화는 정말 대선 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지도자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거든요.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 만들죠. 그리고 절대로 저런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대선후보들도 실제로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절실한 아픔을 느끼고, 국민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성향이 뚜렷하며 영화계의 거장인 정지영이지만 지나친 ‘공경’은 거부한다. 정지영 감독은 “나를 형님이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자체가 듣기 싫다”며 웃어 보였다.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저보고 철이 안 들었다고 해요. 철이 안 들었다는 것이 나쁜 측면도 있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는 편이죠. 워낙 호기심도 많은 편이고요. 그게 바로 젊게 사는 것 아닙니까. 젊게 살면 마음도 젊어지고 외모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그의 차기작은 올해 선보인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 1985’보다는 더 밝고 따뜻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번 작품처럼 영화 내내 아프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멜로와 사랑이 섞여 있는 아름다고 슬픈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물론 바탕에는 시대적 아픔이 깔려있긴 하지만요.”

양지원 이슈팀기자 / jwon04@ 사진 황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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