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CEO 칼럼 - 조재홍> 책 읽는 기쁨
아랍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돌아온 분의 말씀 중에 재미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랍권 사람의 일상대화를 잘 뜯어보면 시적인 표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줄지어 서 있던 남성이 뒤쪽의 여성에게 순서를 양보하는데, 이때 두 사람의 대화가 이렇다고 합니다.

‘먼저 타시지요(남성)/괜찮습니다(여성)/숙녀가 먼저 타야지요/아닙니다.’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마침내 여성이 ‘제 뒷모습을 보이기 싫습니다’하고 사양하면 남성이 날리는 멘트가 ‘장미꽃의 앞뒤가 어디 있겠습니까’하는 시어(詩語)처럼 아름다운 한마디랍니다.

장미꽃으로 불린 여성의 심장은 어떨까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읽었던 ‘열려라 참깨’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문화권의 이야기꾼은 도적의 주문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군요.

얼마전 인문학포럼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지명과 현재의 해당 지역 모습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300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듯한 짜릿한 감동을 느끼면서 돌아오는 길로 최근 발간된 오디세이아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는 사려깊은 부인 페넬로페와 젖먹이 아들 텔레마코스를 뒤로한 채 트로이전쟁에 나서고,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고안해 전쟁에서 이긴 후 부하들과 함께 고향 이타케를 향한 귀로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고초와 엄청난 모험 앞에서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네의 도움으로 고향 이타케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20년 만에 도착한 그의 궁전은 고귀한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로 가득차 있었고, 오디세우스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참을성 많은 오디세우스가 장성한 아들, 슬기로운 텔레마코스와 함께 108명의 구혼자를 모두 죽이고 가족과 왕국을 되찾는 것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풀스토리입니다. 제가 정작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등장인물 앞에 어김없이 붙는 수식어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과 같은, 정결한, 존경스러운 같은 그 시대의 수식어는 해당 인물을 특별히 돋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라는 표현은 새벽을 과연 이보다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아내에게 “정결하고 존경스러운 아내여, 이제 그만 침실로 갑시다”라고 했더니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 하는 폼이 짐짓 싫지만은 않은 듯했습니다. 차마 사무실에서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시처럼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여 직원의 이름을 불러볼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가을에 좋은 책 읽으며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또 하나의 기쁨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장면은 죽은 구혼자의 친지가 오디세우스를 공격해 옵니다만,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와 그의 딸 아테네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원한을 없애버림으로써 모두 화해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인간의 은원(恩怨)을 근간으로 전개되던 대하스토리가 종래에는 신의 의지대로 전쟁과 다툼을 버리고 평화롭게 끝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념과 집단과 분열의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이시여 이 나라를 축복하소서!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