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커버스토리> 믿거나 말거나 ‘찌라시’ …잘못 터지면 ‘인격살인’ 테러까지
초창기 증권가 찌라시 종목 분석에 사용
기업 경영·정치 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도

온라인 메신저 활성화 대량 유통 가능
단속 불구 단순 전달로 처벌도 어려워



#과거 모 정권 당시 A 총리에 대한 내용이 증권가의 사설 정보지, 일명 ‘찌라시’에 떴다. 여자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정부는 찌라시를 뿌리뽑겠다며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과 메신저 등으로 엮인 방대한 정보의 장터에서 뿌리를 뽑기는커녕 수사는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 찌라시 업체의 사장이 구속 수사를 받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던 것이 전부다.

온갖 비밀 폭로의 중심에는 찌라시가 있다. 비밀 폭로의 생산공장이자 확대재생산되는 대량 유통처가 바로 찌라시다.

찌라시는 대부분 1~2주에 한 번 나오며, 간혹 1주일에 두 번 나오는 곳도 있다. 가격은 한 달 기준으로 평균 50만원 안팎이다.

현재 시장에 알려진 찌라시는 15개 정도.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메신저나 SNS 등을 통해 퍼지고, 다시 각종 포털 속에서 재생산되면서 찌라시는 웬만한 일간지보다 더 파급력을 갖게 됐다. 

현재 시장에 알려진 찌라시는 15개 정도.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메신저나 SNS 등을 통해 퍼지고, 다시 각종 포털 속에서 재생산되면서 찌라시는 웬만한 일간지보다 더 파급력을 갖게 됐다.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증권가 찌라시, 왜?=증권가 찌라시는 증권맨을 비롯해 기업체 정보 담당자, 수사ㆍ정보기관, 언론인까지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1~2주에 한 번 정도 모여 각자가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고, 그중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는 것들을 종합해 배포하면서 생겨났다.

하필 ‘증권가’ 찌라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증권가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곧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시중자금이 유입되는 증권가에는 온갖 정보가 모였고, 증권사들 역시 정보 입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찌라시는 정보 제공처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 또는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출처도 없고, 내용에 책임을 지는 경우도 드물다. 상대의 약점을 폭로할 수 있는 통로로 찌라시만 한 게 없다는 얘기다.

과거 A 기업과 B 기업이 서로 견제에 나설 때의 일이다. A 기업 정보담당자는 B 기업의 최대주주가 계열사 소유의 부동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아내 찌라시에 유포되도록 했다. 이 내용이 점차 퍼지면서 언론에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결국은 수사선상에까지 올랐다. A 기업 입장에서 보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전쟁에서 이긴 셈이다.

▶모든 분야의 ‘설(說)’이 집대성=찌라시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길까. 증권가 찌라시에는 초창기만 해도 종목 분석이 주였다. 그러나 대기업과 정치권에서도 정보 수집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찌라시의 내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의 각종 ‘설’로 확대됐다.

이 ‘설’들은 언론에서 다루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인이 잘 되지 않거나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어려운 비밀스런 얘기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정 내용에 대해 확인을 거쳐 특종을 내기도 하지만 드물다.

찌라시에는 특히 당시 사회적으로 관심 있는 이슈가 집중적으로 실리기도 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건설사 등 국내 기업들의 부도설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파급력은 가히 폭발적=찌라시의 파급력이 폭발적으로 커진 것은 온라인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부터다. 증권가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는 다수에게 동일한 내용을 한번에 전송할 수 있어 찌라시의 대량 유통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당시 ‘메신저 주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고, 메신저 정보를 고객이나 기자, 펀드매니저에게 보내는 ‘메돌이’가 증권사마다 존재하기도 했다.

파급력이 막강해진 만큼 그 안에 담긴 확인되지 않은 소문 역시 빠르게 확산된다. 찌라시가 모든 악성 루머의 근거지로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기업들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억측일지라도 찌라시가 한번 돌고 나면 주가나 이미지가 흔들릴 수 있다. 메신저 등을 통해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내용들이지만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주기적으로 돈을 주고 찌라시를 구독하고, 이는 다시 찌라시 업체들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파급력은 커졌지만 신빙성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한 기업체 홍보실 관계자는 “정치나 연예계 관련 내용은 아직도 볼 만한지 모르겠지만 경제 관련 이슈나 기업 관련 내용들은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면 아닌 경우가 많다”며 “지금은 경영진에게 참고사항으로만 보고를 올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찌라시 일망타진? 사실상 불가능=찌라시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은 항상 있어 왔다. 찌라시의 특성상 정권에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소문이 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여러 번 증권사 찌라시를 단속했다. 그러나 항상 그때뿐, 다시 살아났다.

정부 단속으로 일시적으로 종적을 감췄던 찌라시는 경영 리포트나 분석지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파일 복사가 안 되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안을 강화했지만 메신저를 통한 전파는 막지 못하고 있다. 대량으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출처 파악이 어렵고, 단순히 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안상미 기자>
/hu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