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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인류에게 중간은 없었다
이분법
세상의 모든 존재·개념
상반된 두 대립쌍으로 나눠

객관적인 잣대 아닌
우월성으로 나눈 구분일뿐

기발한 발상의 ‘업사이드 다운’
대립된 세계, 금단의 사랑 그려


세상엔 수많은 두 개의 ‘짝패’가 있다. 서로 상반된 성질의 두 존재나 개념이 어울린 대립쌍이다. 선과 악, 남과 여, 음과 양, 덧셈과 뺄셈, 이성과 감성, 동양과 서양, 주인과 노예, 위와 아래, 좌와 우, 유와 무, 빈과 부, 자본과 노동, 문명과 야만, 백인과 유색인종, 지배자와 피지배자, 자아와 타자, 꿈과 현실, 영혼과 육체, 의식과 무의식, 정상과 비정상 등 이루 셀 수도 없다.

어쩌면 세계는 이 대립쌍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일단 굉장히 마음 편한 구분이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최초로 나와 내가 아닌 세계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흔히 내 편과 남의 편을 구분 짓고, 좋은 편과 나쁜 편을 가른다. 남녀와 노소가 각각 할 일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몸에 밴 이분법은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한 사람의 의식을 지배할 경우가 많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도 가장 먼저 선과 악, 좋은 편과 나쁜 편부터 가려내려 한다. 좋은 놈도 아니고 나쁜 놈도 아닐 때는 그냥 ‘이상한 놈’일 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철학과 종교는 영혼과 육신, 이성과 감성을 철저히 분리하는 데 골몰해왔다. 윤리와 사회는 모든 세계를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의 영역으로 구분 지으려 애썼다. 역사는 동양과 서양, 문명과 야만,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를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은 둘로 된 쌍으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기발한 발상을 담았다. 같은 하늘을 맞대고 있는 두 세계, 상부국과 하부국의 금지된 사랑을 다뤘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기발한 발상을 담았다. 태양계 내에 마치 샴쌍둥이처럼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두 개의 별이 있다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중력은 상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같은 하늘을 이고 두 개의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먼 우주에서 본다면 같은 대기권을 공유하고 두 개의 별이 데칼코마니의 양편 그림처럼 맞붙어 있는 꼴이다.

두 개의 세계는 상부국과 하부국으로 나뉜다. 부유한 상부국은 하부국을 지배한다. 피지배국인 하부국은 빈곤하고 황폐했다. 각국의 시민들은 반대편으로 갈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법적으로도 금지돼 있다. 상호 교류나 접촉도 물론 엄격하게 제한된다. 두 세계의 접촉이 유일하게 허용된 곳은 ‘트랜스월드’라는 화학기업이다. 양국의 사람들을 모두 고용한 트랜스월드는 하부국의 석유와 자원으로 전기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생산해 이익을 얻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하부국의 남자(짐 스터지스 분)와 상부국의 여자(커스틴 던스트 분)가 사랑한다. 금지된 사랑이다.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소유한 남자는 ‘역물질’(맞은편 세계에서 반대방향의 중력을 받는 물질)을 개발해 잠시나마 상부국으로 몰래 건너가 여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물론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역물질은 그대로 타버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사랑을 속삭이던 남녀는 끝내 국경수비대의 추적을 받게 된다. 금단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발상은 기발하지만, 논리는 다소 허술하다. 중력이나 인력이 물질에 따른 개별적 속성이 아니라 물질 상호간에 미치는 일반적 속성이라는 점에서 극중 역물질이나 이중 중력이라는 설정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전반적인 상징과 비유는 재미있다. 인류의 오랜 습성인 이분법적인 사고를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두 대립쌍으로 파악하는 사고는 일견 자연에 의해 주어진 고정불변의 진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가 개발해낸 ‘사회적 산물’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능을 한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남과 여, 문명과 야만, 이성과 감성, 영혼과 육체, 백인과 유색인종, 정상과 비정상 등 수많은 대립쌍이 가치 중립적인 분류가 아니라 우열의 가치를 포함한 인위적인 구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선 상ㆍ하의 구분이 결국 상부국과 기업(트랜스월드)의 이익에 복무한다. 그러나 우주엔 상ㆍ하가 없다. 결국 영화는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철학과 역사, 사회학 등 현대의 새로운 논리는 이분법 대신 ‘차이와 다양성’의 사고를 제시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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