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영화 ‘글러브’와 ‘고지전’, ‘퍼펙트 게임’에 이어 흥행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거쳐 ‘용의자X’에 현재 제작 중인 ‘분노의 윤리학’과 ‘나의 파바로티’까지 숨가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용의자X’에선 살인사건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형사 역할을 맡았다. 한 여인(이요원 분)이 성폭행을 피하려다 살인을 저지르자 그녀를 짝사랑하는 천재 수학자(류승범 분)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내고, 조진웅이 연기하는 형사는 헛점을 파고들며 상대와 치밀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영화는 ‘천재수학자의 특별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형사는 관객과 함께 자기희생의 심리를 지켜보고 이해해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조진웅은 이 영화에서 거구에서 나오는 묵직한 존재감을 넘어 상대 논리의 헛점을 파고드는 날렵한 시선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조진웅이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배우로선 적지 않은 나이와 경력에 빛을 본 이유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런 사랑이 과연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생기더군요. 있을 수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작품이 어떻게 설득하는지 가보자는 오기가 들더군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용의자X의 헌신’)과 동명의 일본영화도 봤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현장에서 부딪쳐보자고 결심했죠. 몇 개월간 찍고 있다보니 저는 어느새 석구(류승범 분)의 눈을 보고 있더군요. 그러더니 방은진 감독님과 스탭들은 제 표정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확 오는 거에요. 이게 뭐야 라고 질문했죠. 연기가 잘 될 때는 주위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 말했죠. 야, 야! ‘연기’하지 마.”
‘연기’가 아닌 진짜. 조진웅은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해가며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는 “무식했으니 용감했다”고 표현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조진웅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고교까지 졸업했다. 대학(경성대) 때 다시 부산에 내려갔고, 그곳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며 기본을 다졌다. 부산에서 활동하다보니 표준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도 현지의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장점이 됐다. 불러주는 데가 많으니 무대에 부지런히 섰다. 다작이었다. “알고 덤볐으면 여러가지를 재면서 했을 텐데, 연기관과 배우로서의 자아가 형성되지 않을 때 현장에 투입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는 게 조진웅의 말이다.
조진웅은 고3 시절 진로를 결정할 때 “어차피 성적도 안 되는데, 나중에 어떤 걸 안 하면 후회할까, 후회하지 않을 어떤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극영화과에 지망했다. 담임선생님은 “어차피 안 될 거 부산에서 놀다 와라”며 원서를 써줬는데, 그 길로 내려가 본 시험을 거짓말처럼 통과했다.
군대시절 만났던 동료와의 인연으로 ‘말죽거리잔혹사’에서 단역을 맡아 첫 촬영 현장을 경험했다. “연극과 달리 기능적으로 분화돼 체계 있게 돌아가는 현장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는 조진웅은 그때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말죽거리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함께 했던 유하 감독은 여전히 뵙기가 어렵고 부끄러운, 큰 스승같은 존재다. 아나운서 역할로 나와 제대로 감초역할을 한 ‘국가대표’ 때는 유하 감독이 직접 “너 참 좋더라”며 전화도 줬다.
조진웅은 여전히 영화 현장이 좋다. 영화 개봉을 즈음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혼자 하라고 하면 못 할텐데, 한 목표를 갖고 뜨겁게 만난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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