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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류정일> 경제성장률 하락이 기업 탓?
불황이 닥치면 투자로 맞서며 미래를 대비해온 기업들이다. 선거는 늘 경제에 부정적이었고 글로벌 경기침체는 이미 상수(常數)화 된 상황이라지만, 이러다간 기지개 한번 제대로 못 켜고 겨울을 맞을 태세다.


백척간두(百尺竿頭) 기업들의 처지가 불길한 숫자들로 가시화되고 있다. 3분기 실적발표가 한창인 가운데 상장사의 70%는 ‘어닝 쇼크’에 직면했다. 금융정보업체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8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37개 주요 기업 가운데 70%인 26곳의 영업이익이 시장 컨센서스를 최대 80% 이상 밑돌았다.

기업의 현금흐름도 좋지 않다. 제조업체 10곳 중 1곳은 현금 영업이익의 16배에 달하는 이자부담으로 휘청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1739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36.7%는 영업활동으로 번 현금만으로 이자도 다 갚지 못하는 상태로 드러났다.

특히 하위 25%의 현금흐름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 중 현금으로 이자를 얼마나 갚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은 -1562%였다. 영업으로 100원을 벌 때마다 이자로만 1662원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한 기업들은 현금 쌓아두기에 바쁘다. 삼성전자의 3분기 현금성 자산 규모는 사상 첫 30조원을 넘어섰다. 현대차와 포스코의 현금자산도 각각 18조원과 8조원으로 전분기 대비 크게 늘었다.

증권업계에서는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투자 등 사업 확장보다는 재무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경영 패턴도 위축됐다. 이달 들어 지난 26일까지 상장사의 ‘회사합병 결정’ 공시 건수는 27건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12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해당 기업들은 “사업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 간 시너지를 제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속내는 장기화될 불확실한 경기상황에 대비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미리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도다.

이런 가운데 기업의 부진한 투자가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으며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은 1.6%에 그쳐 2009년 4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기 대비 설비투자는 2분기 7.0%나 감소한 데 이어 3분기에도 4.3% 줄었다.

기회와 이익 앞에서 기업가는 초인적인 용기를 보여왔다. 이를 두고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 했고 존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불렀다.

한때 투자에 적극적이던 기업들의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성장잠재력이 추락하자,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기업들이 야성적 충동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투자해 달라”고 주문,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지난 2006년 여름의 일이다.

불황이 닥치면 투자로 맞서며 미래를 대비해온 기업들이다. 선거는 늘 경제에 부정적이었고 글로벌 경기침체는 이미 상수(常數)화된 상황이라지만, 이러다간 기지개 한번 제대로 못 켜고 겨울을 맞을 태세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징벌적 손해배상제, 일감 몰아주기 금지… 불길한 수치들 사이로 엿보이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야수’를 겁쟁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비현실적인 정치권의 행태로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는 불가능하다.

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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