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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자 대결”에 “3자 토론” 한번도 없는 대선?
중반전으로 접어든 18대 대선은 ‘3자 구도’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향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맹렬한 추격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막판 단일화 변수가 여전히 열려있지만, 대선을 다루는 언론도, 또 여론조사 기관도 세 후보의 말 한마디, 동선 하나를 다룸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이들 세 명의 주자들이 펼치는 TV 토론은 단 한번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 직후 본격적인 막을 올린 150여 일간의 대선 레이스 절반 이상을 끌고온 3자 구도도 ‘기계적 형평성’을 앞세운 선거법의 벽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 되버렸다.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12월 4일과 10일, 그리고 16일 세 차례의 TV 토론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필수 토론이다.

문제는 참여 대상이다. 소위 ‘메인’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3차례 토론 참석자 규정에 따르면, 이번 18대 대선 후보 TV 토론은 ‘빅3’인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는 물론, 1%대 지지율을 오락가락하는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 그리고 심상정 후보까지 함께해야 한다. 의석수 5석 이상의 정당 추천 후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 후보의 경우 무소속이지만,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참석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즉, 실제 대선 구도와는 상관없는 ‘5자 TV 토론’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 같은 어정쩡한 TV 토론은 ‘맥빠지는 토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한번에 2시간 가량 이뤄지는 TV 토론에서 한 후보에게 주워지는 시간은 산술적으로 20여 분에 불과하다. 이 중 사회자, 또는 패널의 질문 시간까지 감안하면 실제 후보자들의 발언 시간은 채 15분에도 못미칠 공산이 크다. 세번의 토론을 다 합해도 30여 분 만에 복잡한 외교, 안보, 경제, 복지, 사회, 정치 현안 모두를 말해야 하니, 당연히 수박 겉 핡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간 단일화가 TV토론회 이전에 이뤄진다 해도 맥 빠진 토론을 피하기는 힘들다. 실제 대선은 여-야 두 후보의 치열한 다툼이지만, 법은 다른 후보들에게도 공평한 시간 배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밤 늦은 시간까지 애써 TV토론을 보겠다고 자청한 유권자들은, 정작 비교대상 밖 후보들을 위해 절반의 시간을 버려야 한다.

이런 재미없는 ‘TV토론’은 ‘TV토론 무용론’을 더욱 부채질 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평가다. 유권자, 특히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명확한 선택 기준이 되야 할 TV 토론이 아닌, TV토론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지지후보를 결정한 ‘열혈 유권자’들만 보는 정치쇼로 전락하는 현상이 더욱 뚜렸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현상은 이미 여러 선거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2년 대선만 해도 세 차례 TV 토론을 봤다는 유권자가 70%를 넘겼지만, 5년 후 대선에서는 49.6%만이 한번이라도 봤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유권자는 TV토론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 지난해 치뤄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TV토론의 우열과 선거결과가 정 반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토론이 다 끝나고 나서 누가 잘했냐고 물으면, 결국 원래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의미없는 TV토론의 반복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는게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각 방송사들이 미국식 ‘타운홀’ 진행, 유권자들의 돌발 질문, 실시간 선호도 평가 등 흥미 유발을 위한 각종 장치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시간의 제한 상 효과를 발휘할 지도 의문이다.

또 눈에 띄게 줄어든 부동층도 TV토론의 영향력을 한층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는 채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특히 야권 단일화를 염두해둔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이 숫자가 5% 아래로 떨어진다. 사실상 대부분의 유권자가 이미 지지후보를 정해놨고, 이들 대부분은 TV토론 결과와 상관없이 투표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빅 3 후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사 자체 토론회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 같은 경직된 법과 제도, 그리고 이에 따른 토론회 자체의 흥미 저하도 한 몫 하고 있다”며 “토론회에 따라 등락이 엇갈리는 미국 대선같은 풍경을 이번 우리 대선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정호 기자 /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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