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조진웅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난해부터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퍼펙트 게임’으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그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로 큰 수확을 거뒀다. 이어 ‘용의자X’에서는 주연을 따내며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연기 실력을 발휘했다.
최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조진웅은 “아직도 이런 인터뷰가 어색하고 떨린다”며 서글서글하게 웃어 보였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정감 어린 말투와 진정성 있는 눈빛이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에게 조진웅이 없었더라면 ‘용의자X’가 완벽한 멜로가 됐을 것 같다고 호평하니 어쩔 줄 몰라하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아닌 누가 했었어도 역할적인 기능이 그랬을 거예요. 연기할 때는 계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석고가 화선을 좋아하는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는 연기가 쉽지 않았죠. 대사도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촬영 감독님의 배려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웃음)”
만약 석고처럼 거대한 희생을 감안하면서까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영화지만 정말 때려잡고 싶었어요. 극중 취조실 장면도 정말 주먹이 날라가는 거예요.(웃음) 실제로 정말 어려운 장면이었는데 (류)승범이가 잘 표현해줬죠. ‘머리 아니야. 가슴이야’ 이 대사를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그 당시 촬영장 분위기도 정말 조용했어요. 촬영이 끝난 순간 마치 기말고사 끝난 것처럼 개운하더라고요.”
극중 조진웅은 라일락을 사랑에 비유한다. 라일락의 쓴 맛을 사랑에 비유하는 장면은 살짝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신이기도 하다.
“어우..정말 저랑 승범이랑 이 장면 못할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엄청 투덜댔죠. 제가 앓는 소리를 내니까 승범이가 ‘형, 머리 아니야 가슴이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워낙 영화가 신파극처럼 문어체가 많잖아요. 그래서 더 오글거렸고요.”
그는 만취 장면에서 마치 실제와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촬영 당시 실제로 술을 마셨냐고 물으니 그는 “그렇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 장면은 원 테이크로 갔어요. 리허설 한 번 하고 촬영했는데 바로 ‘OK’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굳이 이걸 쪼갤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음 컷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바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답니다.”
류승범과 이요원은 가슴 절절한 멜로를 선보인다. 그에 반해 민범 캐릭터는 이혼한 ‘돌싱남’인 데다 로맨스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아쉽지는 않았을까.
“정말 아쉬웠죠. 하지만 감독님 말처럼 극의 전개 상 민범에게는 멜로가 없는 게 더 잘어울렸어요. 또 제 리액션이 관객들의 반응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왜냐면 딱 관찰자의 시점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작품 끝나고 나니 제 연기가 많이 아쉽네요.”
류승범은 영화계에서 고집이 센 배우로도 유명하다. 또한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배우이기도 하다.
“승범이는 정말 고집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요. 또 열정적인 가슴을 가졌고요. 게다가 화술도 좋잖아요.(웃음) 그건 방은진 감독님도 만찬가지고요. (이)요원이도 생각보다 되게 강하더라고요. 모두 모여 술자리를 하다보면 어느 새 대한민국 영화는 다 만들고 있어요.(웃음) 정말 가슴 뜨거운 촬영장이었죠.”
류승범은 외로움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했다. 긴 무명시절을 거친 조진웅에게 외로움은 어떤 존재일까. 하지만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그는 단 한순간도 고독의 구덩이로 빠진 적이 없었다.
“딱히 외롭지는 않았어요. 저와의 싸움이죠. 일단 링 위에 서면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잖아요. 인간 세상 자체가 고독한 싸움 아니겠습니까.(웃음) 하지만 이 치열하고 외로운 작업을 거쳐서 관객들하고 소통할 때 모든 걸 위로받는 기분이에요. 그러나 만약 관객이 외면한다면 정말 힘들죠.”
요즘 조진웅은 대중들에게 ‘신 스틸러’로 떠오르고 있다. 갑작스런 대중들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죠. 그렇지만 뭐 별 수 있겠습니까. 하던 대로 제 본분을 다해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뭐 예전에도 작품에 대한 부담은 늘 있었죠. 그래도 요즘 주변에 ‘헬퍼(Helper)’가 많이 생겨서 기분이 아주 좋은걸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내게 조진웅은 악수를 청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고 손짓 하나에도 가식이 묻어있지 않았다. 대중들에게 늘 진심으로 다가서는 그의 미래 역시 가을 햇살처럼 밝고 따뜻할 것만 같다.
양지원 이슈팀기자/jwon04@ 사진제공=’용의자X’(CJ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