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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모래위에 쌓은 ‘혁신의 탑’…대기업 흉내내다 부실 나락으로
성공신화부터 버블붕괴까지…벤처기업 굴곡의 역사
지식기반 ‘신경제’ 육성 힘입어 2000년 초반까지 부흥
덩치 커지며 관료주의·횡령 등 굴뚝기업 악습 되풀이
새롬기술 등 ‘1세대 주역들’ 잇따라 역사 속으로 퇴장

다음·NHN 등 ‘2세대’ 쉼없는 기술혁신으로 대약진
창의성 갖춘 도전정신 장려 ‘벤처생태계’ 활성화 필요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시절은 코스닥시장이 가장 활황이던 1999년 말~2000년 초다. 당시 ‘벤처’라는 타이틀만 걸면 무조건 돈이 된다며 투자금이 몰려들었다. 벤처기업이 모여있던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 ‘벤처 밸리’에는 활력과 흥청거림이 넘쳤다.

그러나 모래탑 위에 쌓은 성은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2000년 3월 10일 코스닥지수는 2834.4로 최고점을 찍은 뒤 급전직하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 곡절 끝에 ‘벤처 활성화 방안’이 2004년 말 나와 이듬해 시행되기 전까지 시장은 5년간의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이 시기 벤처기업 수는 2001년 1만1392개에서 2002년 8778개, 2003년 7702개, 2004년 7967개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벤처거품이 꺼진 뒤 시장의 학습효과는 가혹했다. 코스닥시장은 2004년 8월 4일 324.71 최저점을 찍을 때까지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벤처기업의 자금난이 시작된 것이다. 


기업공개를 위한 공모는 물론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도 막혀버렸다. 엔젤투자자는 물론 기관, 벤처캐피털까지 시장을 등졌다.

이 기간 숱한 벤처기업이 쓰러지고 주인이 바뀌었다. IT 벤처 신화였던 새롬기술은 솔본으로 바뀌고, 설립자였던 오상수 사장은 2002년 구속됐다. 싸이버텍은 디아이세미콘으로, 골드뱅크는 코리아텐더에서 다시 그랜드포트로 각각 이름을 바꿨으며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다. ‘벤처 원조’로 기록되는 메디슨(현재 삼성메디슨)은 분사와 합병을 통한 세불리기에 열중하다 이보다 일찌감치(2002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상장이 폐지됐다. 대주주의 횡령, 주가조작 등 게이트에 휘말렸던 한국디지탈라인 리타워텍도 같은 운명을 거쳤다. 드림라인 로커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대표,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허록 리타워텍 대표, 김진호 골드뱅드 사장 등 5명은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로 형사처벌됐다.

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창업한 벤처 2세대의 약진은 놀랍다. 다음을 비롯해 NHN 넥슨 엔씨소프트 등은 벤처붐 때 확보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연관사업 진출을 늘려 비교적 우량한 사업구조를 갖췄다. 

벤처 붐이 불던 1999년 말, 이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벤처라는 이름만 달면 투자금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거품은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그 후 10여년, 보다 강력한 혁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벤처는 새롭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위쪽 사진은 벤처 붐의 상징이었던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 아래쪽은 신흥 벤처타운으로 성장하고 있는 판교 일대.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벤처기업 정책의 태동은 1996년 중소기업청 설립과 함께 시작됐다. 시장에서는 이미 1980년대 창업한 메디슨이니 비트컴퓨터니 하는 기술ㆍ서비스 기반의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등장해 시장을 휘젓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 때 벤처기업특별법이 제정됐으며, 코스닥시장 개설 준비작업이 진행돼 김대중정부 시절 벤처는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벤처기업 부흥은 곧 ‘신(新)경제’라는 말로 요약된다. 기술과 자본, 노동력이라는 요소투입형 경제에서 지식과 기술,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정보산업으로 변천이 전 분야에 걸쳐 이뤄졌다. 기업조직상으로도 성과주의와 빠른 의사결정 구조 확산을 불러왔다.

당시 중소기업청 과장이었던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외환위기 직전이었지만 국가경제 성장을 위해 새로운 산업정책이 절실했고, 벤처정책은 그런 필요에 의해 태동했다. 당시 벤처 진흥을 위한 각종 생태계가 마련되지 않았으면 현재와 같은 세계적 벤처기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흥망 역시 거대 굴뚝기업과 결코 다르지 않다. 기업의 몰락은 대부분 자만에서 싹튼다. 덩치가 커지면서 관료주의에 빠지고, 기술혁신을 게을리하면서 경영은 어려워졌다. 그 결과 분식회계, 주가조작, 횡령 등의 비행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몰락 과정은 동서고금이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과 실패를 장려하는 벤처적인 산업생태계는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흥망을 거듭하는 게 인류사이자 경제사이기 때문이다.

메디슨 창업자였던 이민화 한국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갈 때는 선진국 따라하기와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유효하다. 하지만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따라하기가 아닌 남들과 다르게 하는 창의성이 절실하다”며 “다르게 하려면 덩치가 커져 둔한 대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이 유리하다. 실패와 도전을 수용하고 장려하는 벤처생태계가 이런 면에서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reiheit@heraldcorp.com



▶벤처기업 수 증감 추이

연도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8 2010 2011

수 2042 4934 8798 11,392 8778 7702 7967 9732 12,218 15,401 24,645 26,148



자료:중소기업청, 벤처기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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