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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변화무쌍한 미쉐린·듀폰·두산…長壽의 길엔 ‘성공키워드’ 있다
70년전 포브스 선정 ‘1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 18곳 불과
“기업의 평균수명 고작 30년” 통계도

독특한 시스템·끊임없는 투자는 기본
시대의 변화 발맞춘 경영철학 갖추고
고객과 눈맞추며 소통해야 영속 가능



세계 최장수 기업은 서기 578년 설립된 일본의 곤고구미(金剛組)로, 올해로 1430년이 넘었다. 곤고구미는 백제의 목수 유중광이 일본에 건너가 절을 지으며 세운 회사. 고성과 사찰을 건축하고 유지보수하는 건설업체다. 서구에서는 1288년 스웨덴 광산 운영으로 출발한 스토라가 최장수 기업으로 통한다. 스토리는 현재 스토라엔소(Storaenso)라는 사명으로 세계 10대 제지회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 장수 기업은 좀 특별하고 상징적인 사례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 숱한 기업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또 사라져 간다.

포브스(Forbes)는 70년 전 100대 기업 리스트인 ‘포브스 100’을 첫 발표했다. 과연 몇개 기업이 현재 100대 기업의 영역 속에 살아남아 있을까. 겨우 18개에 불과하다.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도 3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 동화약품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된 장수기업도 적지 않다. 업종 역시 다양하다. 수많은 기업이 쓰러질 때 꿋꿋이 버틴 이들 기업, 이들의 생존기술은 뭘까.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경영환경을 개척하며 천수를 누리고 있는 기업들의 생존 비법은 성공의 영문 이니셜 ‘SㆍUㆍCㆍCㆍEㆍSㆍS 코드’에 숨겨져 있다.

▶S(System)ㆍ시스템 경영=창업 123주년인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은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획기적인 신제품 출시, 이미 110여년 전 타이어 모양의 마스코트 ‘비벤덤(Bibendum)’ 창조 그리고 레스토랑 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 발간 등 다채롭다.

미쉐린의 장수 비결은 다양한 경영요소들 간의 균형을 이루며 공격형과 수비형 경영을 적절히 구사한 덕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보안을 지킨 래디얼 타이어는 전후 미쉐린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운영 효율을 중시했던 기업문화는 1980년대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과 1990년대 혹독한 구조조정 및 유연생산방식 도입 등 적절하게 변모했다.

무려 350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의 가위 명가 장쇼우췐(張小泉)도 고유의 가치는 지키고 변화하는 사회상에 걸맞은 적절한 시스템 경영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 전문 가위 연구소와 800여명의 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하며 장쇼우췐은 80여건의 지적재산권 보호에 매년 거액을 투자하고 모조품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행보로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 “장쇼우췐의 가치는 만년이 지나도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극찬을 들었다.

▶U(Unique)ㆍ차별화=카펫의 나라 터키에서도 116년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하스 할르(HAS HALI)는 원료 수집부터 판매까지 차별화로 무장했다. 최상의 카펫을 위해 터키의 무공해 자연 속에서 방목해 길러낸 10㎝ 이상의 양모만을 원료로 사용하고 천연염료를 사용,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발휘한다.특히 집안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지 고민하는 고객을 위해 매장에서 1차 선택한 카펫들을 집으로 가져가 각각 24시간 이상씩 깔아놓고 보면서 낮과 밤 모두 잘 어울리는지 확인한 뒤 구매토록 배려하고 있다.

1904년 설립한 덴마크의 보청기 업체 오티콘(Oticon)은 독특한 기업문화와 연구개발 방식이 눈에 띈다. 업계 1위가 목표가 아닌 ‘사람이 최우선(People First)’을 철학으로 정해진 출근시간도, 정해진 사무공간도 없애 직원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유연한 조직 운영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 오티콘재단은 인간의 귀에 대한 의학적 연구와 보청기 무료 보급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음량 자동조절 보청기와 디지털 보청기 등 혁신적인 상품을 최초로 선보였다.

▶C(Communication)ㆍ소통=영화 ‘로마의 휴일’의 히로인 오드리 헵번조차 반하게 한 젤라토 명가 팔라초 델 프레도(PALAZZO DEL FREDDO)는 ‘제조과정을 모두 공개하라’는 원칙을 132년째 지켜오고 있다. 팔라초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제조과정을 고객들에게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고객들과 눈을 맞추며 사랑받고 있다.

지축을 흔드는 묵직한 엔진음으로 라이더들의 로망인 미국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도 110년 역사의 장수기업이다. 고객의 개성이 모두 다르듯 세상에 단 하나도 똑같은 할리는 없다는 원칙인 할리 데이비슨은 세세한 부분까지 고객이 원하는 그대로 디자인하는 커스텀화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소위 ‘맥가이버 칼’로 통하는 스위스의 빅토리녹스(Victorinox)는 20년이 지난 제품도 고객이 원하면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고객만족 서비스로 128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녹슬지 않는 칼’을 모토로 한 빅토리녹스는 450여 단계 공정 중 완벽에 가까운 품질검수를 자신감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셈이다.

▶C(Challenge)ㆍ도전=1802년 설립한 미국의 종합화학기업 듀폰(Dupont)은 약 300억달러 전체 매출 중 36%가 출시된 지 5년 이하인 신제품이다. 제품군이 1800가지에 달하지만 신제품이 도입되면 한편에서는 오래된 제품의 생산을 중단한다.

듀폰은 1912년 미국 정부의 화약시장에서의 반독점 지위 해소 결정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다이너마이트와 무연화약으로 오히려 사업영역은 확장하고 규제는 회피하며 건재할 수 있었다.

147년 전통 스위스 오르골 업체 루즈(Reuge)는 19세기 후반 이후 라디오와 TV의 등장으로 오르골 산업이 위기에 봉착했지만 수공업 생산을 고집,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과 뚝심있게 맞섰다. 스위스 특유의 장인 정신과 예술성까지 겸비한 명품 오르골로 각인되면서 전 세계 명사들의 애장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E(Environment)ㆍ외부환경 활용=1950년대 미국에서는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의학적 근거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담배 시장도 급변했다. 말보로(Marlboro)도 여성용의 부드러운 담배를 내놨다. 그러나 주소비층인 남성들의 외면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말보로는 전략을 수정해 남성적 이미지로 선회했다. 거친 황야에서 말보로를 피우는 카우보이 광고가 이때 등장했고, 150년 기업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말보로는 미국 담배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에 오를 수 있었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로 자동차 산업이 휘청거릴 무렵, 도요타(TOYOTA)는 고연비, 고성능, 저비용 기술로 개발한 신차로 미국 시장을 공략, 1975년 28만여대를 판매하며 폴크스바겐을 누르고 미국 내 수입차 1위에 올라섰다.

국내에서는 1896년 설립된 두산그룹이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그룹 모체인 두산상회는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고 피란지에서 맥주 원료도 다 잃었지만 부산에서 원조물자를 수송하는 신사업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S(Standard)ㆍ정도경영=성장세를 이어가던 두산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공장의 설계 문제였지만 사회적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두산은 정공법을 택했다. 박용곤 당시 회장이 전격 사퇴했고 수질개선사업 기금으로 200억원을 기부했다.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30억여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며 두산은 그해를 ‘환경원년’으로 선포, 3년간 환경분야에 370억원을 투자했다. 정도를 선택한 두산은 환경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 타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친환경기업으로 거듭났다.

1897년 설립한 동화약품은 제2창업자인 보당 윤창식 사장이 인수한 뒤 일제의 핍박을 받는 동포들을 돕는다는 일념의 정도개혁으로 경영개선에 성공했다. 정도를 밟고 동화 식구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솔직히 시인할 줄 알고 고쳐서 전화위복이 되게 한다는 덕치개혁(德治改革)의 요지는 지금도 최우선 경영 철학으로 한 세기 넘게 동화약품을 탄탄하게 지지하고 있다.

▶S(Social Responsibility)ㆍ사회공헌=‘인도양의 에메랄드’로 불리는 말레이시아 페낭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꼭 사서 즐기는 ‘페낭 과자.’ 그중 155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향(Ghee Hiangㆍ義香)은 단연 으뜸이다. 일품인 맛도 맛이지만 중국인 화상(華商) 기업인 기향이 타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대를 이어온 나눔 활동 때문이다. 지역 재활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며 쌓아온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존할 목적으로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건립중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감사의 뜻으로 인근 한 마을의 이름을 ‘기향 마을’이라고 명명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고용 창출형 공생 전략도 장수 비결로 손꼽힌다. 1990년대 판매 부진으로 생산공장 인근 실업률이 치솟자 회사는 다시 수요 감소의 부메랑을 얻어맞았다. 폴크스바겐은 시 당국에 직업훈련 기관, 부품업체 지원 네트워크 등 실업문제 해결 인프라를 제안했고 대성공을 거두며 기업과 지역사회 간 연대감까지 높아졌다.

<류정일 기자>
/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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