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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이 깃들면 예술의 최전선 열린다
‘미디어시티서울2012’ 제니 홀저 등 17개국 작가 50명 참가… ‘너에게 주문을 건다’ 주제로 서울 스퀘어 · 상암 DMC 등지서 현란한 영상작품 선보여
거대도시 서울이 미디어아트(Media Art)에 물들었다. 서울 정동의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 전체에 참신한 미디어아트가 가득 차 역동적인 파장을 뿜어내고 있고, 서울역 앞 대형빌딩(옛 대우빌딩)과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빌딩, 을지로 한빛거리에선 현란한 영상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고즈넉한 조선궁궐 덕수궁에서도 다양한 전위예술과 영상쇼가 두루 선보이며 가을 도심을 풍성하게 물들이는 중이다.

▶너에게 주문을 걸 테니 미디어아트에 빠져봐=서울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은 올해로 7회째로 17개국 작가 50명이 ‘너에게 주문을 건다(Spell on you)’를 주제로 영상, 설치, 미디어아트 작품을 내놓았다.

유진상 총감독과 한국의 최두은, 일본의 유키코 시카타, 네덜란드의 올로프 반 빈든 등 전시감독들은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의 삶과, 저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비평적 담론과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지닌 작업을 선정했다.

그동안 ‘미술’ 하면 그림과 조각만 떠올렸던 이들에겐 예술에 과학을 결합한 ‘미디어아트’가 어렵고 낯설게 마련이다.

컴퓨터, 동영상, 영화, TV 등 대중에의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을 활용하는 미디어아트는 최근에는 레이저광선, 홀로그램 같은 입체적 테크놀로지는 물론이고 트위터 등 SNS까지 이용되고 있다. 그러니 회화나 조각에 비해 난해할 수밖에 없다. 

서울 도심이 새로운 미디어아트로 출렁인다. 강강수월래, 널뛰기 등 전통놀이를 컴퓨터방식으로 재현한 서울역광장 공연에 참여한 시민의 동작이 컴퓨터에 싱크되면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외벽에는 각 놀이에 맞는 전통문양이 투사된다

하지만 미디어아트도 마음의 문을 열고 즐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소통할 수 있다. 특히 미디어시티서울 2012에는 의외로 쉽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은 데다, 설명 자료가 풍부해 시민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그 폭이 매우 넓다. 제니 홀저(미국), 로베르 르파주(캐나다), 아크람 자타리(레바논) 등 유명 아티스트에서부터 이제 막 촉망받는 신예까지 두루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홍승혜, 최재은, 정연두 등 10여명이 출품했다.

주제인 ‘Spell on you’는 미국의 대중가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1950년대 노래에서 차용된 것으로, ‘Spell(주문)’은 날이 갈수록 초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테크놀로지와 개인, 개인과 집단 간 관계를 은유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각종 첨단기기와 인터넷상 이미지를 비롯해 와이파이,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미디어아트가 그 어떤 미술제보다 다양하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런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층마다 스토리가 연결되는 소주제를 설정했으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을 곳곳에 설치했다. 관객이 놀이하듯 참여할 수 있는 작품 중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블라블라브랩의 작업이 인기다. 관객을 3대의 3차원(3D) 스캐너로 측정한 뒤 플라스틱 입체인형을 만들어준다.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면 그것이 곧바로 조각으로 빚어져 가져올 수 있다.

미술관 3층 구석에선 달콤한 꿀내음이 진동한다. 뉴욕과 예루살렘을 오가며 활동 중인 로미 아키투브는 사무엘 베케트의 단막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의 영상을 틀어놓고, 대사의 파장에 따라 3m 높이에서 꿀이 떨어지게 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보웬은 움직이는 파리 50마리를 투명한 아크릴통 속에 넣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키보드 자판에 찍힌 140자의 글을 트위터로 전송하는 ‘파리 트윗’이란 작품을 시행 중이다. 

위의 사진들은 ‘미디어시티서울’의 특별 프로젝트인 미디어캔버스 전시.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구현되는 흥겨운 영상쇼다.

엑소네모의 ‘데스크톱밤’이란 작품은 사람 대신 컴퓨터 커서가 자동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소리와 화면 파일을 실행해 보여준다. 인간만이 예술작업의 주체가 아님을 보여준다. 흰색, 빨간색의 발광다이오드(LED)볼이 컴퓨터 신호에 따라 8자로 5m 높이의 너른 미술관 공간을 순환하는 다이토 마나베-모토이 이시바시(일본)의 ‘입자들’이란 설치작품은 가히 장관이다. 서울시민에게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그 평균치를 스크린에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로 투사하는 이준&김경미의 작업도 매력적이다.

1층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틸 노박의 작업도 흥미롭다. 놀이공원의 각종 놀이기구를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엉뚱하게 변형시켜 현실로부터 탈출케 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소통과 표현이 날로 가속화되는 세태에서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동시에 첨단기술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기술의 표면밖에 감지하지 못하는 현대의 불안과 왜곡을 드러내기도 한다. 11월 4일까지. 무료 관람.

▶덕수궁에도 첨단 미디어아트가 풍성=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에서 덕수궁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중화전, 행각,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 정관헌 등 6개 전각과 후원에서는 모두 9개의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류재하의 영상작업은 도심 밤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여 화제다. 류재하는 영욕을 간직한 중화전 전면에 환상적인 미디어 영상을 쏘아올림으로써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을 넘나들며 관객을 명상적 차원으로 이끈다. 설치미술가 이수경은 석어당에 수천개의 LED조명으로 ‘눈물’ 조각을 만들었다. 눈물 한 방울이 응결된 듯한 조각은 선조와 순종의 비극적 운명을 위무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프로젝트에는 서도호, 하지훈, 김영석, 정서영, 성기완 등 미술가, 디자이너, 무용가, 음악가가 두루 참여했다. 이들은 ‘남다른 이미지네이션’을 통해 궁궐 곳곳에 새로운 아트 프로젝트를 시현해 적막만 감돌던 덕수궁에 다시금 생기가 돌게 하고 있다.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만 18세 이하 청소년 무료.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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