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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기러기 한 떼, 줄 지어 나는 이유
[함영훈 ㈜헤럴드 미래사업본부장]“한 고개 너머 또 너머로 보인다/ 한 조각 구름 속에 잠긴 둥근 달/ 그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드높이 자란 갈대밭에 드리우는데/ 기러기 한 떼 줄지어 난다/ 처량히 울며 줄지어 난다/ 그 슬픈 추억 지닌 채 저 산 너머로/ 기러기떼 줄지어 난다”

6.25 직후 최창권님이 내놓은 ‘기러기’ 노래 가사이다. 가을 서정을 빌어 시리고 고단한 민초들의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시어를 음미하다보면 가슴앓이에 까지 다다른다.

기러기가 줄지어 날기 시작하는때는 10월 초,중순이다. 기러기는 겨울철새의 척후병이다. 이맘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옆구리가 서늘하고 어르신들은 무릎이 시리다고 한다. 추분을 보름 지나 밤이 부쩍 길어지고 일조량이 적어지며 아침에 찬이슬이 내리는 때다. 10월 8일은 그런 뜻을 담은 절기 상 한로(寒露)이다. ‘기러기가 싸늘해진 창공을 가르고 찬이슬이 새벽 물상을 적시는 때’라고 고려사 등은 적고 있다. 따뜻함이 쌀쌀함으로 변하는 분기점이고, 한반도 연간 기온 평균값에 해당한다.


일조량이 줄고 낮이 짧아지면, 빛이 적을 때 생기는 호르몬 ‘멜라토닌’이 과다하게 분비돼 몸의 리듬이 깨지고 기분도 침울해진다. 계절성 우울증상이다. 사람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흔히 “가을을 탄다”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멜라토닌이 증가하면 욕구의 통제기능을 맡는 호르몬 ‘세로토닌’은 줄어든다.

‘가을 타기’가 혼자만의 현상이 아니므로 가을에는 서로의 감성을 잘 살피는 배려가 필요하겠다. 이유없이 침잠해있는 직장 후배에게 “(기가) 빠졌다”며 쫀다고 해결될 마음상태가 아닌 것이다. 기러기들에게 고단한 날개 쉬어갈 기회를 줘야한다. 기러기가 떼지어 다니는 이유는 서로를 다독여 멀리 날기 위함이라고 한다. 기러기 공동체가 힘을 합쳐 만든 ‘V’자형 편대는 비행의 중요한 조건인 양력(揚力)을 키우며, 리더의 ‘기룩,기룩’ 추임새는 구성원의 의지를 북돋운다는 것이다. 기러기는 가을을 지혜롭게 타는 대표적인 동물인 것 같다.

가을 타기를 방치하면 인간의 이성과 합리가 묻힐 수 있다. 빛의 감소가 초래하는 멜라토닌 증식을 억제하려면 밝은 조명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환경이 좋다고 한다. 아울러 멜라토닌의 천적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걷기를 많이 하라고 의사들은 권한다. 가을을 타기보다는 이 계절 살진 말(馬)을 타는 건 어떨까. ‘심리적 이상 현상’(Psy)엔 ‘말춤’이 걷기보다 한 수 위의 효과를 보일 것 같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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