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기업가 정신, 그 뿌리를 찾아서…> 육의전 자리에 ‘박승직 상점’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다
<6> 梅軒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인화경영의 출발지 종로를 가다
조선말기 육의전 폐지되자
일반 상인에 기회 오리라 확신
4가 귀금속 상가 끝자락서 개업

100년 지나 공원된 그 자리엔
100주년 기념 거대한 철탑
두산인의 바람 타임캡슐에 묻어

박두병회장 생가 터는 아트센터로
영등포 맥주공장은 주민쉼터 변신



한낮 따가운 햇살 아래 이따금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하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인들과 물건을 사려는 고객들로 떠들썩했다.

종로는 상업으로 시작해 맥주 중심의 소비재기업을 거쳐, 현재 종합중공업그룹으로 성장한 두산그룹의 시원(始原)이다. 창업주인 매헌 박승직은 조선 말기 육의전이 폐지되자 자신과 같은 일반 상인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으로 확신, 1896년 8월 종로4가에 ‘박승직상점’을 개업했다.

박승직상점은 지금으로 말하면, 종로2가에서 4가로 이어지는 귀금속상가 끝자락, 종로4가 사거리 부근에 있었다. 지금은 소공원(小公園)으로 조성돼 그룹의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당시 그룹을 총괄했던 박용곤 회장이 1996년 8월 두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거대한 철탑을 세운 것이다. 당시 첨단 정보ㆍ기술(IT)을 상징했던 플로피디스크가 3개의 철기둥 사이에 켜켜이 들어차 있어 제법 웅장해 보였다. 철탑을 보면 그룹의 시발점에서 또 다른 100년을 기원했던 두산인들의 바람이 느껴진다.

철탑 아래에는 100년 뒤 두산그룹의 경영진이 공개하게 될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지름 77㎝, 높이 150㎝의 이 타임캡슐은 두산그룹의 근간 사업이었던 맥주의 숙성 탱크 모양과 똑같다는 게 두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두산의 100년 역사를 상징하는 각종 기록과 물품 200점이 담겨 있다. 후손들은 2096년 8월 타임캡슐을 개봉하게 될 ‘두산의 유물’에서 벅찬 감동을 선물 받지는 않을까.

① 1934년 당시 2층으로 증축해 새롭게 단장한 박승직 상점의 1층 소매부 모습. ② 박승직-박두병-박용곤 3대 부자가 함께. ③ 1920년대 이사한 60여칸 규모의 연강 박두병의 생가. 지금은 두산아트센터가 들어서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그룹]

철탑 왼편에는 1930년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박승직상점을 재현해놓은 부조가 있다. 2층의 깔끔한 양옥 건물의 출입문 사이로 종업원이 손님을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직원들에게 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들에게 친절히 대하라는 매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종로4가를 지나 5가 약국 상가를 지나다 보면 두산의 초대회장 연강 박두병 회장의 생가 터가 나온다. 지금은 그 자리에 두산아트센터가 들어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연강의 생가는 1991년까지 이 자리에 보존되다가 아트센터 착공 직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선영 안으로 옮겨졌다.

두산그룹은 1993년 그룹 창업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아트센터를 건설했다. 교육장학재단 사업 위주의 사회공헌활동을 문화예술 사업까지 확대하자는 취지로 과감하게 연강의 생가 자리에 아트센터를 짓기로 한 것이다. 실제 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는 비영리로 운영된다. 신인 작가 발굴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스페이스11(Space 11)은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장르를 전시해 ‘아트 인큐베이터’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덕분에 아트센터 근처는 젊은 예술가와 이들의 공연과 전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활기찬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바로 두산그룹의 근간이 됐던 동양맥주(현 OB맥주)의 서울 영등포 공장 터. 두산그룹이 지금은 철수했지만 동양맥주를 인수한 1952년부터 OB맥주를 매각한 1996년까지 맥주 사업은 두산그룹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지금 그곳은 ‘영등포공원’으로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했다. 1996년 그룹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영등포 공장 부지 1만9000여평을 서울시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동양맥주에서 쓰던 담금솥이 공원 내 문화마당 왼편에 남아 있어 이곳이 맥주공장 터였음을 당당히 증명하고 있다.

담금솥이란, 맥주 제조 공정에서 맥아와 호프ㆍ전문ㆍ양조용수 등을 배합해 끓인 후 발효시키는 핵심 설비 중 하나. 청동으로 제작된 이 솥은 지름이 7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한 번에 500hℓ(헥타리터)를 끓여냈다고 한다. 담금솥에는 ‘1933년에 제작해 1996년까지 맥주 제조용으로 사용됐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맥아를 끓여내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역사적 주인공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100여년의 역사 동안 시대에 맞게 변모하면서 창업 당시 사업이 남아 있지는 않다”면서 “두산은 또 다른 100년을 위해 끊임없이 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