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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은 ‘국가 성패’의 한 모델
포용적 체제 수용여부에 따라 빈국·부국 갈려…세계 역사 · 제도 비교 경제불균형 원인 분석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원조를 주는 나라로, G20의 당당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저개발국가의 성공 모델로서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어떤 나라는 잘사는가.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제임스 A. 로빈슨은 화제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이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지난 15년간 로마제국, 마야 도시국가, 중세 베네치아, 구소련, 라틴아메리카, 잉글랜드,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동시대 역사와 제도를 비교하며 저자들이 찾아낸 세계 불평등의 요인은 한마디로 제도다.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는지는 정치적 선택이 좌우한다고 본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성공으로 이끄는 제도는 모두를 끌어안고 잘살게 하는 포용적인 제도다. 반면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정치 경제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가져온다.

저자들은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는 각국이 처한 상황과 우연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특히 역사적 사건은 결정적 분기점을 이룬다고 말한다. 가령 흑사병과 1600년 이후 세계무역 확대는 기존의 상이한 제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각국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1346년 서유럽 소작농은 동유럽보다 비교적 많은 권리와 자율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봉건제도의 몰락을 이끌어낸다. 반면 동유럽은 재판농노제라는 상이한 결과를 낳는다. 또 1600년 잉글랜드 왕실의 힘은 프랑스와 에스파냐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통한 무역에 집중한다. 그 결과 폭넓은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길을 열어준다. 반면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왕실의 힘만 강화됐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제시된 불평등이론을 하나하나 논박해 나간다. 그중 국가 실패를 지도자의 무지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오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수 엘리트가 수탈적 제도를 선택하는 건 경제발전으로 가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포용적 제도가 불러올 창조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가 불러올 결과는 부와 소득분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권력도 분산시킨다. 이렇게 되면 수탈적 체제의 지배층이 인민을 통제하기는 더 이상 어렵다. 

저자들은 오늘날 국가가 경제적으로 실패하는 이유가 ‘착취적 제도’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국가의 정치ㆍ경제적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착취적 제도를 포용적 제도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산업발전을 촉진할 철도를 놓지 못하게 한 합스부르크 황제와 러시아 차르, 대중을 일깨울 인쇄기술 보급을 막은 오스만제국의 술탄 등은 바로 그런 예다.

그런가 하면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식민지 노예와 중세 유럽의 농노는 혁신에 애쓸 유인이 없었다. 혁신으로 늘어난 산출을 모두 빼앗아가는 수탈적 체제 때문이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근현대 세계불평등이 시작된 것은 산업혁명이다. 각국이 이 결정적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국부가 갈린 셈이다. 잉글랜드 명예혁명과 비슷한 이양과정을 경험한 미국은 18세기 들어 독자적인 포용적 정치 경제 제도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받아들여 부의 길로 들어섰다. 시기적으로 늦었지만 호주 역시 포용적 제도를 향해 비슷한 길을 걸었다. 포용적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유럽 식민지들은 착취적 제도와 수탈 때문에 포용적 제도가 태동할 토양이 메말라버렸다.

그러다 보니 19세기는 물론 20세기까지 산업화의 수혜를 입을 형편이 못됐다. 중국과 일본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절대주의 체제를 고수한 중국은 포용적 제도를 끌어들일 여지가 없었던 반면 일본은 영주들이 쇼군을 몰아내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냄으로써 제도개혁과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용적 제도가 발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저자들은 강조한다. 진정한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이어져야 한다. 공정한 경쟁의 장이 보장되지 않고 독과점 기업이 경쟁자의 진입을 막을 경우 성장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별 역사의 특수성을 축소하고 단순화시키는 일반화에도 불구하고 열린 사회에 대한 전망을 경제제도, 국가의 부와 연결시킨 점은 새롭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남북한의 차이를 비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한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걸은 연원은 분명하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상황은 부국과 빈국을 가르는 일반이론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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