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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온 산하가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요란했다. 1년에 하루, 조상님 이발하는 날을 맞아 전국 각지의 자동차들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와 풀숲에 앞범퍼를 들이밀었다. 떼가 삭은 자리엔 잡풀들이 무성했다.

쥐꼬리망초, 쑥부쟁이, 새팥 등 어여쁜 이름을 가진 다양한 초본들이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예초기의 일자날 앞에 속절없이 고개를 꺾었다. 인심 좋은 이들은 무연고묘에도 예초기를 들이댔다.

지난해에도 그 자리에서 고개를 꺾었던 녀석들이다. 분묘기지권을 알지 못하는 잡풀들은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되살아와 자손들의 효심을 시험할 터이다. 예초기를 드는 일은 적당히 나이든 숙련자의 몫이다. 봉분 먼 곳부터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풀이 쓰러졌다.

예초기가 머무는 시간은 봉분의 주인과 가까운 촌수(寸數)일수록 길었다. 아주 나이든 이들은 손가락을 베여가며 낫으로 벌초하던 손맛을 잊지 못해 예초기 먼 곳에 웅크려 앉아 무덤의 주인을 추억했다. 손이 빈 사람들은 더미를 이룬 잡풀을 봉분 바깥으로 내던졌다. 풀에선 알싸한 풋내가 났다. 아이들은 봉분 바깥에서 운동화발로 밤송이를 까며 자지러졌다.

예초기가 멈춘 곳에선 어김없이 술잔이 돌았다. 오래된 동구나무 아래에 군청색 햇살이 고여 있다. 조상님 이발을 마쳤으니 이제 말쑥한 옷차림으로 정성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술잔을 올릴 차례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삶의 새 희망을 쏘아올리는 시간이다. 추억의 영사기가 비포장도로 위에서 터덜거리며 돌아간다.

다시금 추석이다.

글=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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