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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든타임’, 사회의 축소판…병원에서 조직을 말하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골든타임’은 끝났다. “응급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었다. ‘의학드라마’라는 옷을 입고, 불과 5분 사이 환자의 생명이 수많은 고개를 넘나드는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대형병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 수없이 쏟아졌던 ‘종합병원’, ‘하얀거탑’ 등의 의학드라마와는 달랐다. 환자와 의사가 중심이 돼 드라마를 이끌고 화학조미료같은 멜로가 가미됐던 천편일률적인 의학드라와는 달리, ‘골든타임’이 비집고 들어간 것은 ‘대형병원’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조직이었다. 그 곳에서 의사는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피 흘리는 전쟁터’에 파견된 일개 병사들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느리고 있는 각 과의 과장급 의사들은 그 병사들을 진두지휘했던 상사들이다. 병원은 하나의 조직이고, 사회였으며, 드라마가 조명한 것은 ‘조직과 리더’, ‘조직 안의 개인’, ‘조직 안의 시스템 부재’가 가져오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무사안일주의’와 ‘조직의 퇴보’였다. 그러니 ‘골든타임’은 전혀 새로운 의학드라마였다. 


▶ 최인혁과 중증외상센터, 불완전한 개인과 조직의 시스템=“튀지 말 것, 룰을 깨트리지 말 것, 그리하여 조직의 질서를 유지할 것. 그것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질서일지라도.”

‘골든타임’에 천재의사 장준혁(하얀거탑)은 없다. 다만, 혈혈단신 고군분투하는 최인혁(이성민)이 있을 뿐이다. 최인혁은 대형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병원이라는 조직은 중증환자들을 수술하고 치료할 특별한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한 채 최인혁에게만 의존한다.

폐쇄적인 조직에서 ‘능력은 인정하나’ 유난히 튀는, 게다가 동료들의 자리를 침범하는 최인혁의 존재는 ‘눈엣가시’다. 외과와 내과를 넘나들며, 한계도 영역도 없는 것처럼 응급환자를 도맡아 치료하는 최인혁은 ‘오래 고인 물’ 안에 뛰어든 청개구리였다.

기존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4명의 과장(극중 나병국, 황세헌, 김호영, 김민준)들은 조직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득실을 따진다. 그러면서 조직의 질서를 강조하고 ‘권위주의’를 내세운다. 조직의 서열을 강조하며,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지난 22회 김민준(엄효섭) 과장의 후배가 교통사고로 실려오니 수술부위를 놓고 각과의 과장들은 때 아닌 논쟁을 벌인다. 배를 먼저 가를 것인지, 심장을 먼저 가를 것인지다. 그 사이 환자는 어레스트(심박동 정지)가 오고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 열혈인턴 이민우는 이 황당한 참극에 “최인혁 교수님을 부를까요?”라며 네 명의 과장에게 비장의 카드를 던지지만, 누구도 ‘중증환자’ 전담반 최인혁에게 만큼은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 최인혁을 인정하는 것은 곧 ‘안정된 조직’을 와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전없는 조직의 절망적인 현실이다.


최인혁의 ‘힘의 부재’는 결국 조직 내 시스템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조직 안에서 능력있는 개인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조직이나 무사안일주의의 유혹을 받기”(피터드러커, ‘매니지먼트’) 때문이다. 이는 4명의 과장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최인혁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해줄 ‘중증외상센터’가 없었기 때문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부산 해운대 세중병원은 헬기사업에서도 탈락하고, 정부의 외상센터 지원지역에서도 탈락한다. 현실과 같았다. 실제로 부산 지역은 최근 외상센터 건립 공모지역에서 제외된 바 있다.

판타지를 꿈꾸는 시청자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드라마는 신의 손으로 환자를 척척 살려내는 의사 대신 “최악의 상황 중 하나가 해결됐을 뿐”이라는 의사 최인혁을 내세우고, 이리저리 치이는 최인혁이 ‘중증외상센터’의 수장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산 넘어 산’을 그려간다. 한 고비를 넘으면 해결될 것 같아 보이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23회에서도 보여졌다. 응급환자 수송을 위한 헬기는 준비됐지만, 생명을 담보로 한 상황에도 헬기에 타는 절차조차 복잡하다. 기다리던 헬기는 도착도 않고, 막상 그것을 타고 상공을 가르니 내려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땅 위를 뱅뱅 돌고 만다.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는 현실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때문에 ‘골든타임’은 시스템의 부재를 통감하며 뛰어난 의사를 감싸안는 ‘수뇌부의 의지’와 ‘국가의 지원’과 ‘잘 짜인 시스템’을 역설한다. 


‘인턴 나부랭이’에서 단숨에 ‘이사장 대행’으로 변신한 강재인(황정음)이 각 과의 과장들을 면담하며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 절감한 것 역시 ‘개인의 의지’가 아닌 ‘조직의 의지’와 ‘시스템의 구축’으로 잘 짜여진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조직도 그 안의 개인도 진일보한다는 것이었다.

드라마는 물론 드라마였다. 넘어야할 산은 많지만 헬기운송은 구구절절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소방방재청과의 MOU로 시작됐으며, 영안실 2층으로 외상팀 병실이 마련됐다. 이민우는 조직의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수장의 반대에 부딪혀 레지던트 외과 면접에서 탈락하지만, 멘토인 최인혁에게 4년 뒤를 기약했다.

이민우의 4년 전 오늘에 최인혁은 “나를 롤모델로 삼지 마라, 롤모델이 실패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민우는 기꺼이 롤모델을 따른다. 사방의 벽으로 가로막힌 조직일지라도 그 안의 개인은 결국 성장한다. 이민우도, 최인혁도 성장했고, 세중병원은 한 걸음 나아갔다. 겨우 이정도가 돼야 ‘조직의 진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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