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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안의 아픔…그 발설의 욕망이 곧 연기”
내달 3일 개봉 ‘점쟁이들’서 파계승役 곽도원
송강호·설경구 계보잇는 연기파
영화 ‘범죄와의 전쟁’등서 내공 폭발

“술이나 먹으며 노는게 꿈이었는데…
연기는 모든 상처들의 치유과정
배우나 점쟁이나 팔자는 비슷”


배우 곽도원(38)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깡패보다 더한 ‘꼴통 검사’ 역으로 떴다. 그리고 탄탄대로다. 드라마 ‘유령’에 출연했고, ‘점쟁이들’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회사원’ ‘분노의 윤리학’ ‘환상의 콤비’ 등 주ㆍ조연작이 줄을 서 있다. 꼭 반 년 전 개봉작 ‘범죄와의 전쟁’에서야 처음으로 대사다운 대사를 받았던 곽도원이다. 불과 몇 개월 새 그는 대한민국의 유명배우 중 하나가 됐으니 송강호나 김윤석ㆍ설경구ㆍ최민식 등 기라성같은 선배가 한국 영화계에서 도약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욱일승천의 기세라 할 만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연기에 대한 확신이 드느냐”고 물으니 되돌아온 답은 다소 의외였다.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나 차려서 좋아하는 사람과 벗하며 술이나 먹으며 노는 게 꿈”이라고 했다. 왜?

“제가 가족이 없이 혼자 살아요. 추석 명절 때만 되면 남들은 가족 모여서 뭐한다 하는데 저 혼자 집에 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짜증만 나서 제주도에 간 적이 있어요. 게스트하우스에 갔는데 혼자 온 손님으로 바글바글 하더라고요.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 많구나’했죠. 그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 잔씩 하다보니 보름이 훌쩍 갔어요. 연극 때려치우고 영화하는데 단역이나 하고 앉아 있었으니, 다 그만두고 집 팔아서 부동산중개소에 내놓고 게스트하우스나 차리자 했죠. 술이나 먹다가 죽어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가족이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곽도원의 말투 뒤에는 어딘지 아픔이 묻어난다. 그에게 연기란 꼭꼭 눌러담았던 감정의 발현이자 상처의 치유일 것이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지난해 추석 무렵 ‘범죄와의 전쟁’ 직전이었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이 단역 인생을 바꿔놓았다. 10월 3일 개봉하는 ‘점쟁이들’은 거하게 굿이나 한 판 해주고 목돈을 손에 쥘 요량으로 한 마을에 모인 전국 팔도의 내로라하는 ‘점쟁이들’의 이야기다. 한탕해서 돈이나 챙길 생각이었지만 뜻밖에 기가 세고 무시무시한 원혼을 만나 겪는 한바탕 소동을 담았는데, 곽도원은 귀신을 보는 파계승 역을 맡았다. 속칭 점쟁이, 점잖게는 역술인이다. 그는 남다른 경험도 있다.

“예전 사귀던 여자친구네 집주인이 점쟁이였어요. 저야 점을 믿지 않지만, 불려가서 만난 적이 있죠. 쌀을 뿌려 귀신을 불러낸다고 하는데 슬슬 실소가 터지더라고요. 점쟁이의 안색이 확 변하더군요. 저를 쏘아보는 눈이 무시무시한 겁니다. 잊혀지지 않아요. 저게 뭔가 싶었죠.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괄시하는 존재라도 역술인에겐 그들만의 강고한 신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도 거짓인 각본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되새기면서 사람들에게 연기를 보여주는 직업이지만 역술인의 믿음과는 비교도 안되더군요. ”

그 때의 점쟁이 왈, “역마살이 있네. 연기는 잘 선택한 거야. 훗날 잘 되겠네”라고 했단다. 말대로 됐지만, 배우 곽도원이 아닌 인간 ‘곽병규’(본명)의 삶은 요철이 많았다. 고졸 후 극단에 들어가 3년을 버텼다. 조명기 들고 포스터 붙이며 선배에게 두들겨 맞던 세월이었다. 아동극 전문극단도 차려봤으나 쫄딱 망하고 스물여섯살의 마지막날 연희단거리패의 밀양연극촌으로 내려갔다. 연극의 기본기를 다지고 주역도 맡았지만 선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결국 4년 만에 쫓겨났다.

서른 즈음에야 영화로 전향해 오디션 인생이 시작됐다. 그 중의 한 출연작이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전계수 감독의 눈에 띄면서 ‘러브픽션’에 출연했고, ‘황해’를 거쳐 ‘범죄와의 전쟁’까지 오게 됐다.

곽도원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았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한 쪽 귀가 안들린다. 그의 이력 중 ‘군대 얘기’가 빠진 까닭이다.

곽도원은 “가족이 없다”고 지나치듯 털어놓았지만 늘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말투 뒤에는 어린시절 순탄하지 못했던 가족사와 연극배우 시절 어머니와의 사별, 철이 들 무렵부터 잇따랐던 실연의 아픔이 숨겨져 있다. 그에게 연기란 꼭꼭 눌러담았던 감정의 발현이자 상처의 치유일 것이다.

“어떤 역할이든 다 배우의 내면과 경험에서 나오죠. 아픔의 정도, 슬픔의 크기, 그리움의 깊이를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게 연기죠. 안에 쌓인 게 많다보니 무대를 이용해서 발설하려는 욕망이 강한 게 아닌가 생각돼요. 너무 아픔이 많고 쌓인 게 많으니까…. 그런 면에서 점쟁이나 연기자의 팔자가 다 비슷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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