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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 2차 피해를 막자] 구두선에 불과한 예산 늘리기보다 효율적 집행이 우선
[헤럴드경제= 박병국 기자] 지난 2011년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 9710명에게 지원된 의료비는 1인 평균 6만원이다.

의료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확대 요구를 외면해왔다.강력 성폭행 범죄가 잇따르면서 피해자 지원 촉구 여론이 빗발치자, 여성부는 지난 10일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내년에 올해보다 50% 가량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500만원으로 제한했던 1인당 치료비 한도를 없애고 의사 처방만 있으면 회복이 될 때까지 모든 의료비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공언한대로 예산을 늘릴 수 있을지, 집행은 약속대로 할지 의문이다. 지금 껏 여성부의 약속 대부분이 공염불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장 수요 맞게 예산 집행돼야= 예산 확대 방침에도 현장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현재 예산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성폭력 피해지원예산 248억원은 전국의 성폭력상담소ㆍ피해자보호시설ㆍ피해자통합지원센터 등 217곳에 배분돼 의료비 및 법률지원 비용으로 사용됐다. 다만 어떤 곳은 예산이 남고 어떤 곳은 부족하다.

실제 A 지역의 한 상담소는 올해 3분기(7~9월) 예산을 아직까지 지급받지 못했다. 피해자 의료비 지원에 필요한 예산 지급이 늦어지면서 치료 및 상담이 필요한 피해자들이 발걸음을 돌리기까지 한다. 예산이 부족해 시설 자체적으로 빚을 지기도 한다. 해바라기아동센터의 경우 지난 6월 현재 전국 9개소 중 3개소가 빚을 지고 있다.

상담소 관계자는 “긴급히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들에게 돈이 없어 지원하지 못할 땐 개탄스럽다. 정부가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여가부는 이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관계 국장들을 모아 올초 예산배분을 위한 정산을 매월 초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단 한번도 실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가부가 “말만 요란했지, 실천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반기 예산 부족분을 하반기에 정산해 뒤늦게 보충하는 한 발 늦은 탁상행정이 계속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김정숙 여성ㆍ아동성폭력피해지원단장은 “여성부, 법무부 등에 흩어져 있는 지원금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 상황 따라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비나 법률지원 비용 뿐만 아니라 피해자 상황에 따른 거주이전 및 학비 등 추가 지원의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친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경우 주거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아동ㆍ청소년 피해자의 경우는 보호시설 입소 시 학업중단을 막기 위해 학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여가부는 LH 공사와 함께 가정폭력 및 성폭력피해자를 위해 임대 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임대주택은 전국에 118곳에 불과하며 이 마저도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해 369명의 임대주택 입소자 중 성폭행 피해자는 7명으로 전체의 2%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쉼터에서 벗어난 피해 여성들이 결국 피해를 당한 장소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집을 옮기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많지만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그대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동ㆍ청소년 성폭행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여가부는 생활비와 중ㆍ고교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학자금 지원이 끊기는 탓에 가장 큰 목돈이 필요한 대학입학 때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해야한다.

상담소 관계자는 “피해 아동이나 청소년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대학입학금을 일부 지급하거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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