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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 · 집단 그리고 역사 · 삶… ‘두리반’<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둥근상>서 되돌아 보다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 제9회 광주비엔날레 대장정 돌입
볼프강 라이프의 무각사 설치 ‘망망대해’
제니 홀저의 광주보듬은 ‘광주를 위하여’
전세계 42國 92명 작가 303점 선봬

亞의 문화생산 위한 수평적 교환의 장
전시관외 사찰·시장등 전시공간도 확대


바람이 한결 선선해진 9월. 광주시 서구문화센터 전광판에선 광고와 뉴스 사이에 ‘Fear is’ ‘고문은 잔인하다’같은 텍스트들이 흘러 나온다. 미국 작가 제니 홀저가 ‘2012광주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광주를 위하여’란 작품이다. 이 디지털 비디오를 통해 홀저는 아픈 역사를 겪은 도시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의 무각사(無覺寺)에선 한국 작가 우순옥이 2층의 작은 방 여덟 곳에, 여덟 가지 빛깔의 조명을 2분40초 간격으로 바꿔가며 빛의 연주를 펼치고 있다. ‘아주 작은 집’이란 이름의 이 심오한 조명작업 중심에는,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가 절에서 재배한 쌀과 꽃가루로 작은 산들을 쌓아올렸다. 쌀과 꽃가루는 생명과 재생을 은유한다.    

‘2012광주비엔날레’가 7일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오는 11월11일까지 전 세계 42개국의 작가 92명(팀)이 총 303점(개별작품으론 1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60%가 비엔날레를 위해 새로 제작된 신작이다.  

광주 도심의 사찰 무각사에 설치된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의‘ 망망대해’. 절에서 재배한 쌀로 작은 더미들을 쌓아 광대한 우주 속 인간의 본질을 묻고 있다.                                                                       [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두리반에 앉아 집단과 개인, 역사와 삶 돌아보기=‘라운드테이블(원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 광주비엔날레는 김선정 예술종합학교 교수, 마미 카타오카 모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등 아시아의 여성 큐레이터 6명이 전시를 꾸몄다. 이들 공동감독들은 각기 ‘역사의 재고찰’ ‘친밀성 자율성 익명성’등 6개의 소주제를 내걸고 비엔날레를 이끌었다. 다양한 지역의 역사와 활동을 가로지르며, 각 공동체와 다양한 맥락의 소속감을 성찰한 이들이 도출해낸 결과는 따라서 하나의 관점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평도 있으나 ‘산만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

김선정 감독은 “6명이 공동감독이 됐을 때부터 예상했던 비판이다. 라운드테이블은 다양한 안건들을 상정해 의견을 나누는, 여럿이 둘러앉아 밥을 나눠먹는 한국의 ‘두리반’처럼 대안적 형태의 전시를 지향했다”고 했다. 따라서 올 비엔날레는 하나의 접점을 찾기보다는, 여러 갈래로 분화하며 전 지구적, 특히 아시아의 문화생산을 위한 수평적 교환의 장이 되고 있다. 또 전체 출품작 중 절반 가까이가 아시아및 아랍권 작가의 작품이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제로서 그 성격을 공고히 했다. 특히 광주의 비극적 역사, 장소성 등을 고찰한 작업들이 여럿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주는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쓰는 투명방패 108개를 기와처럼 이어 기다란 지붕을 엮었다. 그리곤 그 아래로 일상용품을 점토로 빚어 줄줄이 매달았다. 작품명은 ‘분리불가’. 경찰의 방패가 유적지처럼 보이는 도시를 막아주는 형상이다.

서도호는 광주 구도심에 남아 있는 흔적들에 주목해 이를 탁본으로 떴다. 관람객들에게도 탁본을 직접 뜨게 하고 있다. 그리곤 이 탁본들로 집을 지음으로써 광주만의 역사성을 되돌아보는 ‘탁본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올 비엔날레는 개인의 경험과 실존에 초점을 맞춘 작업도 여럿이다. 김수자의 작업이 좋은 예다. 비엔날레 주전시관 구석의 어두운 방에서 김수자는 31분짜리 신작 ‘앨범;허드슨 길드’를 선보이고 있다.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하며 작가는 뉴욕의 이주민 출신 60~80대 노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담으며 작가는 ‘피터’ ‘스티브’하고 이름을 부른다. 순간,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주노인들의 구부정한 모습은 관람객의 심상에 오랜 잔상을 남긴다.      

사진작가 노순택의‘ 희망과 절망의 버스’. 억압적인 시스템 속 샐러리맨의 절박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사찰, 낡은 극장, 시장까지 전시공간 확대=올 광주비엔날레는 본 전시관 외에 도심 사찰, 낡은 극장, 재래시장, 생태습지 등으로 전시공간을 확장했다. 따라서 비엔날레를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이틀은 할애해야 한다.

야외작업도 여럿 볼 수 있다. 비엔날레 전시관 광장에는 번쩍이는 거울로 만든 탁구대 14개가 놓여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시민 누구나 이 탁구대에서 탁구를 칠 수 있게 했다. 단 물음표가 그려진 흰 티셔츠를 입고 쳐야 한다. 네트로 나뉜 탁구대는 분단 한국을, 공격과 수비는 냉전시대의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그러나 정작 거울에 비치는 것은 광주의 하늘과 탁구를 즐기는 시민의 모습이다.    

1930년대에 지어진 광주극장과 사택에는 공간적 특성을 살려 광주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녹여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마그누스 뱃토스(작가이자 저술가)는 광주극장에서 ‘스벤손 일대기 생중계’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작고한 친구 스벤손의 삶을 무성영화로 만들고, 변사의 내레이션을 더해 광주극장에서 상영하는 광경을 비디오로 담아 보여주는 독특한 작업이다. 멕시코 출신의 조각가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는 광주극장 사택에서 3주간 거주하며 지금은 용도폐기된 공간에서 나온 잡동사니들로 공간을 재구성하고 작품도 설치해, 생활과 경험이 연계된 예술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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