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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서상범> 성폭행 피해자 배려 꽉막힌 경찰
본지가 기획 연재 중인 ‘성폭력 2차 피해를 막자’의 첫 번째 기사<헤럴드경제 9월 6일자 12면 참조>가 나간 후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사례로 소개한 강제추행 피해자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사 내용은 ‘강제추행 피해자가 고소를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여경이 아닌 남자경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고 피해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제출했지만 얼굴이 함께 표시되지 않아 경찰이 얼굴을 포함한 알몸사진을 제출하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당시 피해자의 하복부에 추행흔적이 있었고, 피해자는 해당 부위만을 찍어왔기에 증거로 인정되기 어려우니 얼굴이 함께 찍힌 사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피해자는 상의를 입고 하체만 노출한 채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이를 알몸으로 보기 어렵다”며 “기사의 내용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통화를 하는 동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경찰에게 알몸의 정의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아야 알몸이지 않느냐”는 경찰 관계자의 주장을 들으며, 하의를 벗고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찍어야만 했던 피해여성의 침통함을 경찰이 이해했으리라고 믿기는 어려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전적 정의에 집착하는 태도가 책임회피에 급급한 이기심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첫 보도가 나간 후 많은 독자들이 e-메일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부분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일부 경찰의 잘못된 행태를 철저히 지적해 성폭행 피해자를 따뜻하게 감싸는 경찰 조사문화를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일손이 모자란 경찰에게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까지 치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공감의 능력을 발휘해 주길 기대할 뿐이다. 성폭행 피해자를 피의자처럼 다룬다거나 성폭행 피해자 입장에서 배려하는 수사가 없다면 국민도 경찰의 고충에 공감하기 어렵다.

<서상범 자>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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