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 21명 전원에 ‘사후피임약 약국판매’ 물어보니…
일반의약품 전환 찬성 5명, 반대 3명, 나머지는 ‘생각 중’.‘세상의 절반’ 여성의 인권과 성정체성과 직결된 사후피임약 약국 판매 허용을 둘러싼 갈등을 최일선에서 다뤄야 하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21명 의원의 생각이다. 편의성과 여성 인권, 그리고 오남용 부작용과 종교적 윤리를 이유로 입장을 정리한 의원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이 “잘 모른다” “당론이 어떨지 몰라서”라는 이유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무개념 의원도 있었다. 19대 국회에서도 이익단체의 로비에 의해 국민건강과 생활에 직결된 사안이 ‘엉뚱한 산’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7일 헤럴드경제가 19대 국회 복지위 소속 의원 21명 전원을 대상으로 사후피임약의 약국 판매와 의사처방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김명연ㆍ김희국ㆍ류지영 의원(새누리당), 이목희ㆍ최동익(민주통합당) 의원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 약국에서도 판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성의 피임 주도권을 확대해야 한다”(류지영 의원), “소비자를 중심에 두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최동익 의원) 등이 일반의약품 전환에 찬성하는 주된 이유였다. “성폭행 같은 범죄의 2차 피해 방치 차원에서도 고려해야 한다”(김명연ㆍ이목희 의원)는 시각도 나왔다.
오남용 우려, 그리고 종교 윤리적 문제를 이유로 명확하게 “반대” 소신을 밝힌 의원도 있었다.
김현숙 의원은 일부 여성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체피임 수단이 많이 있는 가운데, 건강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사후피임약의 오남용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현주 의원도 “지금 단계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할 경우 피임에 대한 부담을 여성이 떠안게 될 수 있다”고 부작용을 우려했다. 일부 의원은 종교적인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찬반을 명확하게 정한 의원은 소수라는 점이다. 절반이 넘는 12명(의결권 없는 상임위원장 제외)의 의원은 여전히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보건복지분야 전문가이자 여성단체를 대표해 입성한 한 의원은 “사후피임약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고, 사회적 공감대 역시 형성된 뒤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답변을 피했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지 못해 생긴 혼란”이라며 자신의 판단은 미뤄둔 채 정부의 미숙함 탓이라는 변명도 나왔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말이 되는데 아직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답은 차라리 솔직하게 느껴졌다.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논란과 관련, 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전문가들은 이런 복지위 국회의원의 무소신이 이익단체의 로비와 행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만 부채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벌어진 의약품 분류 논란을 지켜봤던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사후피임약 논란에도 국회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며 “관련 법안을 잘 알지도 못하는 국회의원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현행 의약품 분류 결정 과정에서 국회의 개입 여지가 충분치 않은 제도적 한계와 함께 의원의 무관심도 질타했다. 남 팀장은 “국회에서 보건복지부 등 정부를 불러 대안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관련 여론을 만들 수도 있는데,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비단체인 약사회와 의사회의 힘겨루기 속 실속을 챙기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문제됐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와 달리 사후피임약 문제는 젊은 여성층에 국한된 것으로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여론 형성 능력을 가진 약사회와 의사회 눈치를 보는 편이 유리하다는 생각”이라고 일침을 놨다.
많은 수의 의원이 표가 안되는 여성의 권리보다는 약사 또는 의사단체의 압력 가운데서 눈치만 볼 것이라는 경고다.
실제 개원 100일이 지난 19대 국회에선 지난 6월과 7월 의사 출신인 박인숙 의원과 여성단체 출신의 남인순 의원이 각각 토론회를 열고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이해단체의 첨예한 이견만 확인하고 끝난 바 있다. 관련된 입법이나 대안 제시는 정기국회가 시작된 이 시간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정호ㆍ김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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