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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현실 · 불안한 미래… ‘황금시대로 회귀’ 꿈꾸다
대중문화, 1990년대 정조준한 新복고열풍 왜?
소비주체로 떠오른 X세대 겨냥
응답하라 1997’ ‘건축학개론’ 등
상업적 복고 콘텐츠 대량 생산

창의적 재해석 없는 ‘추억팔이’
장르적 다양성 위축 등 아쉬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 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가 활약하던 1920년대를 ‘황금시대’로 동경한다. 길이 꿈꾸는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 분)는 고갱과 드가가 살았던 1890년대를 ‘황금시대’로 꼽는다. 고갱과 드가는 한술 더 떠 르네상스 시대를 ‘황금시대’로 부르며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상상력이 죽은 시대’라고 한탄한다. 저마다 동경하는 ‘황금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든 ‘황금시대’는 과거를 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황금시대’는 1990년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도 드라마도 영화도 1990년대가 가장 아름다운 ‘황금시대’였다며 ‘무드셀라 증후군(과거의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경향)’에 빠져 있다. 그러나 ‘황금시대’를 추억하는 심리를 한 꺼풀 벗겨보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21일 오후 11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9회, 10회 방송분에서 ‘전설의 대전쟁’이 부활했다. 15년 전 흰색 우비를 입은 H.O.T 팬과 노란색 우비를 입은 젝스키스 팬들 사이에 공개방송 입장을 앞두고 벌어졌던 이 일촉즉발의 신경전 장면은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젝스키스의 리더 은지원은 드라마에 직접 출연까지 해 현실감을 더했다. 드라마에 삽입된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서지원의 ‘아이 미스 유’, 이지훈의 ‘왜 하늘은’, 터보의 ‘회상’ 등 당대 최고의 히트곡들은 시청자들을 1997년으로 ‘타임슬립’시켰다. 지난 28일 방송된 11회, 12회 방송분은 평균시청률 3.46%, 최고시청률 4.43%(AGB닐슨 기준)라는 ‘초대박’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TV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올 초 영화 ‘건축학개론’이 ‘90년대 학번’을 불러들이며 본격화된 ‘복고 열풍’은 이제 대중문화의 대세다.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과 같은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과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등 신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오른 곡들을 살펴보면 ‘복고’는 최근 가요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도 주인공들이 회상 장면을 통해 1990년대의 모습을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오는 28일에 방송 예정인 KBS 2TV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엔 진행자 김원준을 비롯해 심사위원 조성모, 현진영 등 90년대 가요계를 이끌었던 주인공들이 프로그램 전면에 등장한다.

김봉현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의 복고 열풍은 전 세대에 비해 풍요로운 대중문화를 향유했던 X세대들이 본격적인 소비주체로 떠오르며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복고 콘텐츠의 양산은 이들을 겨냥한 제작자들의 다양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복고 열풍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브라스 세션을 전면에 내세워 빈티지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 60~70년대 스타일의 멜로디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올 초 그래미어워드 6개 부문을 휩쓴 아델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복고 열풍은 과거의 콘텐츠 그 자체에 천착해 상품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보다는 각박하고 치열한 현실에 기댈 곳 없는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감의 탈출구로 ‘황금시대’에 열광하는 모양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의 복고 열풍은 일종의 ‘추억팔이’에 가깝다”며 “복고 열풍을 등에 업고 재등장한 당시의 인기가수들 역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과거를 그대로 반복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지금의 복고 열풍은 과거의 콘텐츠 그 자체가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흐름이 강하다”며 “이 같은 성격의 복고 열풍은 새로운 것, 진취적인 것으로 향하려는 대중예술의 경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임 평론가는 “과거의 분위기를 재해석해 하나의 장르 형태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 건강한 복고의 역할”이라며 “장르의 다양화와 창작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정진영 기자>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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