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휴지·세탁세제 재등장
CJ오쇼핑·현대 히트상품 대열에
80만원대 청소기 없어서 못팔아
오쿠·휴롬 등 고가 소형가전도 인기


‘아주 싸거나, 혹은 비싸거나.’

최근 홈쇼핑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품목들은 서로 모순되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휴지나 세제 등 생활필수품을 10원이라도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저렴한 생필품 판매가 홈쇼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너가 됐다. 동시에 건강이나 취미와 관련된 상품들은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황이란 말이 무색하게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다. 홈쇼핑에서도 소비 양극화가 뚜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싸게, 더 싸게…2년 만에 등장한 휴지 판매 방송=GS샵은 지난 5월 말부터 화장지와 미용티슈, 키친타월을 묶은 세트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은품으로 활용되던 휴지가 판매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2010년 미국발(發) 세계 경제 위기 이후 2년 만이다. 화려한 조명과 쇼핑호스트들의 미사어구가 휴지에 집중된다는 것은 다소 어색한 일이지만 방송 때마다 3000세트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다.

CJ오쇼핑에서도 올 상반기 휴지 판매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나 늘었다. 세탁세제 ‘퍼실’은 올 상반기에 53억원의 취급액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지난 11일 방송에서는 1시간 동안 4억5000여만원의 취급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생필품이 홈쇼핑 판매액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가 된 것은 저렴한 가격과 구매 편의 때문이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휴지나 세제 등 생필품들은 대부분 묶음으로 판매되면서 가격이 대형마트 개별 판매가보다 20~30% 정도 저렴하다. 또 주문만 하면 집으로 배송이 되기 때문에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제품을 직접 들고올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이 같은 이점에 힘입어 현대홈쇼핑에서도 ‘리큐’ ‘퍼실’ 등의 세제가 최근 방송에서 모두 목표를 120% 이상 달성했다.

▶탄산수 제조기부터 건강식 튀김기까지…고가 가전도 승승장구=홈쇼핑이 생필품 대량판매 전문 매장으로 자리를 굳혔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최근 홈쇼핑에서 깜짝 히트를 친 제품들은 수십만원대의 주스 제조기부터 물로 먼지를 빨아들인다는 청소기까지 다양하다. ‘없어도 그만’인 제품들이다. 그러나 건강과 기호에 소구하는 상품들의 인기는 불황을 타지 않는다.

GS샵에서 선보인 ‘소다스트림 크리스털 탄산수 제조기’는 일반 물을 상큼한 탄산수로 만들어주는 소형가전이다. 가격은 39만8000원으로, 홈쇼핑 판매 상품 중에서는 고가에 속하지만 1회 방송에 6억~7억원 상당의 매출을 거뜬히 올릴 정도로 인기다.

80만원대의 고가 청소기도 없어서 못판다. ‘필립스 아쿠아트리오 청소기’는 7월 첫방송에서 443대 매진을 기록한 이후, 8월 26일 방송에서도 준비 물량인 600대가 전량 팔렸다. GS샵은 물을 이용해 미세먼지까지 빨아들인다는 제품의 특장점이 소비자에게 통한 것으로 분석했다.

건강과 관련된 주스 제조기‘ 휴롬’은 35만원대라는 고가인데도 상반기에만 4만3000여건의 주문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건강과 관련된 제품은 고가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고열의 수증기를 이용해 집에서 건강식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주방가전 ‘오쿠’(29만원대)는 CJ오쇼핑에서 올 상반기 주문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70%가량 신장했다. ‘오쿠’보다 고가인(35만원대) 주스 제조기 ‘휴롬’도 상반기에만 4만3000여건의 주문을 받으며 꾸준한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홈쇼핑에서는 과일과 채소를 원액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갤럭시원액기’(32만원대)가 상반기에만 140억원의 판매액을 올리며 히트 상품으로 꼽혔다. 임현태 현대홈쇼핑 마케팅팀장은 “불황으로 인해 저가의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프리미엄 상품들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불필요한 지출이나 충동적인 구매를 줄이더라도 자신의 건강이나 기호를 위한 상품에는 과감히 소비하는 이른바 ‘가치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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