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펄펄 날고 있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사전심의를 받았다면 이 같은 성공이 가능했겠냐는 야유와 함께, ‘한류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규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런던올림픽 개ㆍ폐막식에서 영국은 자국 문화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전설’이라 불리는 세기의 예술가들이 등장할 때마다 탄성이 쏟아졌다. 무대에서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출연자도 있었다. IT계의 거물 팀 버너스 리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 소장이다.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월드와이드웹(www) 시스템을 만들어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국경 없는 소통을 가능케 한 인물이다. 셰익스피어, 조앤 롤링, 비틀스가 인류에게 선사한 감동 못지않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그를 향해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경의와 박수를 보냈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이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대에게 보내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는 레퍼토리였다.
1982년 첫 인터넷 도입 후 30년을 맞은 올해 세계 IT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에서 팀 소장의 공을 무색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부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효된 것이다. 18대 국회가 졸업시즌인 작년 12월 30일자로 통과시킨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앞으로 모든 인터넷 뮤직비디오는 사전심의를 통과해야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다. 위반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펄펄 날고 있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사전심의를 받았다면 이 같은 성공이 가능했겠냐는 야유와 함께, ‘한류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규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갖가지 문제점은 차치하고, 규제 대상이 국내법이 적용되는 내수시장에 불리할 뿐 아니라, 글로벌 유통시장에서 국내 제작사들이 받게 될 역차별 우려와 해외 지사를 통한 역수입도 가능한 만큼 실효성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뮤직비디오 사전심의 의무 규정을 삭제하고 자율적·사후적으로 심의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20일 다시 발의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시점이 휴일이었던 만큼 발효되자마자 곧바로 개정하는 절차를 밟게 됐다.
1년 전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음반 심의로 시끄러웠던 때가 데자뷔처럼 연상되는 대목이다.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인디 듀오 십센치와 아이돌 그룹 2PM의 ‘핸즈업’ 등 대중가요에 대해 무더기로 19금 등급을 매겨 논란이 됐었다. 여가부는 업계와 국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심의기준을 세분화하는 과정을 통해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싸이는 지난 5월에야 2년 전 19금 판정을 받았던 5집 앨범 수록곡의 심의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가 가능했다. 유통기간이 빠르고 짧은 대중음악시장에서 2년 전 음원은 상품성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올드송이 돼버렸다. 새 개정안은 규제를 최소화하고 통제는 엄격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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