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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김성진> 대한체육회, 선수노력 1%만 본 받았다면…
IOC의 발언 한마디에 온나라가 뒤집어졌다. IOC 발언이 어느 정도의 수위인지 파악할 외교인력이나 네트워크가 없다는 방증이다. 박종우의 세리머니는한국 스포츠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병사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지휘관이 무능하면 전투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병사들의 노력으로 쟁취한 승리마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휘관들이 많다는 걸 확인하며 절망한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이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것은 한국 축구사에 기념비가 될 만한 쾌거다. 하지만 이 힘겨운 전투를 승리한 병사들을 좌절케 하고 있는 것은 지휘관들이다. 경기가 끝난 뒤 박종우가 관중이 전해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보드판을 들고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가 있던 날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독도를 방문해 한국과 일본의 관심들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경기장 내에서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도 금지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이 분명히 존재하는 한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논의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이 때문에 IOC의 한 관계자가 ‘박종우의 메달 수여를 유보할 수 있다’는 뜻을 한국선수단에 전했다.

여기서 축구대표팀과 한국선수단을 이끌고 힘이 돼줘야 할 지휘부의 한심한 행태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대한체육회(회장 박용성)는 IOC와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의견교환이나 설명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박종우에게 시상식 불참을 지시했다. 박종우가 일본을 비난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한국의 땅으로 알고 살아온 독도 관련 피켓을 들어올린 게 문제이거나 혹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독도는 당연한 우리 땅이니 그런 세리머니는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선수들을 보살피고 책임져야 할 대한체육회라면 당황하고 있을 박종우를 먼저 안심시키고, IOC와 대등한 위치에서 설명을 해나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펜싱의 신아람이 오심판정에 어필 못한 것이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던 대한체육회였으니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IOC(의 한 조정관)의 가벼운 조언에 화들짝 놀라 알아서 자국 선수의 시상식 불참을 지시하는 것은 일국의 체육계 최고단체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대한축구협회(회장 조중연)의 행동은 더욱 가관이다. 축협이 일본축구협회에 박종우의 세리머니와 관련해 사죄공문을 보냈다는 일본 언론의 기사를 먼저 접한 뒤 ‘어떤 문서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아전인수 격으로 확대해석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추후 공개된 대한축구협회 공문의 내용은 어처구니없을 뿐 아니라 수치스러운 지경이다.

지난해 대표팀 감독 해임과정에서도 비정상적인 일처리로 파문을 일으켰던 축협은 조중연 회장 명의로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전달한다’는 공손한 사과문을 보냈다. 공문서에 어법 틀린 곳이 허다하다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이 세리머니는 일본축협에 사과할 일이 아니다. 축협은 대한체육회와 국제축구연맹(FIFA)을 상대하면 되는 일이었다. 설사 해결한다 해도 잘잘못을 따져볼 생각도 않고 사과를 하는 행위는 한국축구 자체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저자세 외교에 불과하다.

IOC의 발언 한마디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IOC 발언이 어느 정도의 수위인지 파악할 외교인력이나 네트워크도, 축협회장의 오판을 막아줄 시스템도 없다는 방증이다. 박종우의 세리머니는 한국 스포츠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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