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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불편하게 시작된 스포츠 후원 역사
전두환, 우민화위해 ‘3S’시작
기업들 지갑 반강제적으로 열어



기업의 스포츠 후원 역사는 80년대 초반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12ㆍ12사태,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등으로 집권해 정통성이 결여됐던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 여론을 돌리기 위해 소위 ‘3S정책’을 폈다.

‘3S정책’의 목표는 영화(Screen), 스포츠(Sport), 섹스(Sex)를 이용한 우민(愚民)화였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기업들에 지갑을 열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와 프로씨름이 차례로 출범했다. 시작은 전시행정이라는 점에서 불순했지만 이를 계기로 스포츠의 발전과 동시에 국민 여가의 질 향상도 이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프로야구가 흥행에 성공하자 마뜩찮은 심정으로 후원을 시작했던 기업들도 브랜드 홍보를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84년 LA올림픽 종합순위 10위 진입은 그러한 결실의 시작이었다.

한국 올림픽선수단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종합 순위 5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이 같은 선전은 역대 최고 성적을 낸 양궁(금 3ㆍ동 1), 사격(금 3ㆍ은 1), 펜싱(금 2ㆍ은 1ㆍ동 3) 등의 종목에 힘입었다. 런던올림픽 출전 22개 종목 중 양궁, 사격, 펜싱 등 7개 종목의 협회장을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맡고 있다. 이들 기업이 스포츠계 출신 인사들로서는 어려운 재정적 지원을 통해 런던올림픽의 선전을 도왔음을 부인할 순 없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0대 그룹의 스포츠 관련 지출액은 총 4276억원이다. 이는 문화체육부 연간 체육예산(8403억원)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시작된 기형적인 지원의 그늘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먼저 스포츠 지원의 홍보 효과에 의문을 가지는 기업들이 많다.

전경련이 지난 6월 발표한 ‘국내 10대 그룹의 스포츠 사회 공헌 조사 결과’는 ‘프로팀 운영이 기업의 브랜드인지도 형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주요 대기업에 있어 프로팀을 통한 추가적 광고 효과는 크지 않은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스포츠팀이다. 2000년대 들어 기업 소속 스포츠팀이 줄줄이 해체된 이유다. 기업들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스포츠팀 상당수가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944개 실업팀 중 절반 이상인 473개 팀을 지자체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운영의 어려움으로 해체된 실업팀은 50여개에 달한다.

또한 기업들이 투자액만큼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프로 스포츠단체의 구조도 문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나 한국농구연맹(KBL)의 경우 기업의 돈으로 운영하는 데도 정치인 출신들이 총재들이 낙하산 임명된 뒤, 구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스포츠 후원에 나선 기업과 재벌들에는 여전히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진영 기자ㆍ추영 인턴기자ㆍ정초이 인턴기자>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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