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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흔아홉의 화가 한묵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야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한국 현대미술사의 산 증인인 재불(在佛) 화가 한묵(韓默)이 한국을 찾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세인 화백은 자신의 도불 5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위해 파리에서 날아와 기자들과 만났다.

백수(白壽)를 목전에 둔 노 화백은 귀가 잘 들리지않는 걸 빼곤 건강했다. 특히 목소리는 청년처럼 쩌렁쩌렁했다. 고령인 탓에 큰 작업은 못하지만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면 붓을 잡고 글씨를 쓰거나 시를 쓰며, 책을 읽는다. ‘작가는 언제나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며 공기 좋은 교외를 마다하고, 30여년 째 파리 도심의 오페라하우스 옆 좁은 집에 살고 있다.

그가 10년 만에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대표 조정열)에서 갖는 대규모고국 전시(8월 22~9월 16일)에는 미발표작 4점을 포함해 유화 40여점이 나온다. 작고 갸날픈 체구에 어떻게 저런 큰 그림을 그렸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로 출품작들은 초기작을 제외하곤 대부분 대작이다.


한묵 화백의 삶에는 우리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서울 출생인 그는 20대를 만주에서 보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미술학교를 다녔다. 귀국 후에는 금강산및 고성 일대에 머물며 원산(元山)에 살던 이중섭과 가깝게 지냈다. 지금도 이중섭과 함께 했던 금강산 여행을 떠올리곤 하는 그는 두살 아래인 이중섭이 마흔에 요절하자 슬픔에 겨워 비문을 직접 쓰기도 했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온 그는 종군화가로 한국전쟁을 스케치했으며, 이후 서울에 터전을 잡았다. 그러나 1961년 안정된 미대 교수(홍익대)직을 버리고, 불쑥 파리로 건너갔다. 교수직에 안주했다간 그림다운 그림을 못그릴 듯해 내린 결단이었다. 거의 맨주먹으로 고국을 떠나오는 바람에 생계를 위해 거리 청소부며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을 그렸다. 대작을 그리고 싶어도 집이 너무 좁아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곳저곳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기(氣)는 시퍼랬다.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으면 몇달, 몇년을 한 테마에 매달리며 작업을 풀어가곤 했다. 결혼도 환갑을 훌쩍 넘겨 했을 정도로 오로지 그림에만 푹 빠져 지냈다.


초창기 그는 전쟁의 참상 등 암울했던 이 땅의 상황을 묵직한 구상 작업으로 형상화했다. 인간의 해골 옆에 시든 꽃 한송이를 곁들인 ‘꽃과 두개골’(1953년작) 같은 작업은 지금 봐도 혁신적이고, 신랄하다.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가 인간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박거나 해골을 그리며 명성을 구가 중이지만 한묵 화백은 60여년 전에 이미 참담했던 전쟁상황을 해골 작업으로 표현했다.

감옥에 갇힌 듯한 한 인간이 텅빈 백자 사발을 앞에 두고 번뇌에 빠진 작품 ‘흰 그림’(1954년), 헐벗은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모자’(1954년) 등에도 시대의 아픔이 꾹꾹 눌러져 담겼다. 창살에 앉아 있는 인간은 곧 작가 자신이란 점에서 자화상인 셈이다.

이후 작가는 유영국 박고석 황염수 등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 초창기에 큰 족적을 남긴 미술동인인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하고, 조형요소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우리 식으로 체화해 한국 모더니즘미술의 새 전기를 연 것. 그리곤 1961년 돌연히 도불, 파리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색채와 형태, 마티에르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며 시공간을 표현하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1969년 미국의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을 하자 엄청난 쇼크를 먹었다.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3년간을 끙끙 앓았다. “2차원인 화폭에 어떻게 하면 3차원, 4차원을 담을 수 있을까 번민했고, 그게 일생의 내 화두가 됐다”고 했다.

회화 속 ‘공간’의 문제에 천착했던 화백은 역동적 우주공간을 방사상으로 뻗어가는 다이나믹한 그림으로 표현해 ‘한국 기하추상의 대부’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른다. 그는 “어딘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공간을 느끼려 하지않는 건 문제”라고 되뇌었다. 


또 “공간의 리듬 속에서 우주 본래의 모습, 순환의 법칙을 본다. 생의 맥박은 짹각짹각 초침을 새긴다. 그것은 엄연한 공간의 울림(Sonorité)이다”고 했다. 그의 후반기 작업은 우주적 시공간으로서의 4차원적 공간감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평론가인 피에르 캄봉(파리 기메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그의 작업에 대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취향, 도약의 힘, 생명력, 완벽한 기하학에 대한 환희가 있다“고 평하고 있다. 


100세를 앞두고 화가로서 행복했느냐고 묻자 “나는 지금 죽음 가운데에 있고,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이라며 “죽음이라는 건 누구나 예외없이 만나는 것이고, 그냥 때가 오면 간다고 생각한다. 심각할 게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열일곱 연하의 부인 이충석 여사는 “선생은 언제나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고 싶다’고 하신다”고 덧붙였다.

전시에 맞춰 한 화백의 작품 100여 점이 수록된 생애 첫 화집도 출간(마로니에북스)될 예정이다. 02)2287-3500. <사진제공=갤러리현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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