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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경제민주화, 한국 경제적 특수성에서 봐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란 말은 요즘 한국 경제발전의 위상을 표현하는 단골 상용구가 됐다. 거기엔 ‘정부 주도 경제발전의 성공사례’란 뉴앙스가 담겨있다.

여기에 시장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내놨다. 한국경제발전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발전은 절반 정도에만 해당하며, 시장 발전이 이를 주도했다는 평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시장경제연구원(MERI)의 연구원들이 펴낸 ‘시장경제의 재발견’(한빛비즈)은 한국의 압축성장의 힘을 한국 시장경제의 특수성 속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저자들은 한국이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지속 성장ㆍ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정부가 아닌 시장경제체제를 든다. 경제발전과정에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생산을 조직하고 시장을 개척한 것은 민간기업이었으며 이들을 움직인 것은 시장의 유인체계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시장체계를 잘 굴러가도록 시장 신뢰기반을 제공한 것일 따름이란 얘기다.

책은 시장지향성이란 관점에서 한국경제발전과 정부정책을 평가한다. 정부의 경제 운영과 산업, 금융, 노동, 복지, 부동산, 교육 등 7개의 영역으로 분류한 뒤 시기별(1979년 이전, 1979~1987년, 1987~1997년의 외환위기, 외환위기~2008년 금융위기)로 나눠 평가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분석한 한국만의 독특한 시장경제의 특성은 무엇보다 민간기업과 정부의 파트너십이다. 일반적으로 시장과 정부는 대립관계로 보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시장과 정부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빠르고 조직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반면, 정경유착과 재벌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또 다른 특징은 정부 주도형이 주효한 건 성장초기이며 이후에는 민간의 역할이 더 컸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정부가 세운 틀만 벗어나지 않는 한 보통의 시장보다 큰 권한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는 남미 등과 비교할 때 차이점을 드러낸다.

저자들은 또 IMF 외환위기가 부작용도 있었지만 한국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저자들은 시장지향성 측면에서 각 정권의 성적표도 내놨다. 박정희 정권의 경우 경제정책은 좋은 성과를 냈지만 시장지향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며, 전두환 정권은 의외로 개방과 시장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또 노무현 정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경제성장률이 나쁘지 않았다.

저자들의 입장은 시장에 무게중심을 두지만 시장에 무조건 자유를 줘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와는 선을 달리한다. 시장경제와 정부 개입은 흔히 말하듯 갈등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이란 쪽이다. 성숙한 시장경제 시스템일수록 제대로 된 정치와 정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 정부 역할이 축소된다고 경제가 성숙하고 시장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경제가 지속적,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시장제도를 보호하고 시장기능을 보완하는 데 정부 역할은 오히려 크고 중요하다고 본다.

저자들이 말하는 시장지향성 정책이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요소와 다르지 않다. 선택의 존중, 자발적 거래의 인정, 자유로운 경쟁의 장려, 가격기구의 원활한 작동, 사유재산권의 보호 등이다. 이는 투자 증가, 생산요소의 효율적 사용, 기술혁신을 이끌며 분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흔히 시장경제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인식돼 왔지만 그것은 어쩌면 다른 요인에 의한 결과를 시장경제 탓으로 돌리는 오류일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제도는 무조건적인 경쟁도, 규제 완화도 아닌 ‘한국적 특성에 맞는 제도 정착’이다. 따라서 분배나 복지도 한국이 시장경제의 틀을 버리고 공산주의 체제로 갈 것이 아니라면, 자원분배와 복지 등의 문제는 결국 시장경제의 틀 위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기어가 되다시피 한 ‘보이지 않는 손’을 다시 꺼내든 건 자못 의미심장하다. 경제성장과 복지 등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만능주의 사고에 빠진 좁은 시야를 넓혀준다. 특히 복지, 의료, 교육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적 가치가 지배적인 영역이 시장적 가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생기는 문제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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