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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이태형> 술약속도 보고(?) 하는 경찰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 소속의 한 팀장은 늦은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식사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문자를 보낸 직원은 이날 저녁 개인적인 술자리가 있었다. 퇴근 길에 이미 보고했지만, 귀가하면서도 다시 문자를 보내 무사귀가를 알렸다. 이 팀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음주 keeper’로 불린다. 보고를 받을 때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싶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일부 경찰서에서 직원들의 음주운전을 줄이기 위한 대안책으로 ‘음주계획 보고’를 시행하면서 인권 보호의 일선에 있는 경찰 직원들의 인권이 정작 등한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대책이 나온 데는 최근 경찰관의 음주운전 위반 건수가 늘어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올해 1∼7월 중 지난해 동기 대비 9.8% 감소한 반면 일선 경찰관의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같은 기간 49건에서 55건으로 12.2% 증가했다.

시민의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하는 경찰관의 음주운전 위반 사례가 늘자 경찰은 지난 7월말 지휘관 회의를 통해 자체 대책을 마련했고, 이 대책 일환으로 나온 것이 일일 음주계획 보고다.

경찰서장 지침으로 음주보고를 받고 있는 한 경찰간부는 “서울청에서 주취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직원들의 음주운전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보고도 내부 회식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부 지침에는 ‘회식 등’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내부 회식 외에도 개인적인 약속까지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서울청 산하 경찰서와 일부 지방경찰청에서 이 같은 음주보고를 받고 있다. 해당 지방청과 경찰서 간부들은 “강제성이 없고 서로 챙겨주기 위한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어 직원들은 큰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이구동성으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점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관 역시 공무원이기에 앞서 시민이다. 일반 시민에 비해 행동에 보다 주의가 요구된다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사생활 보장의 권리가 경찰관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정작 경찰 지휘관들은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구석이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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