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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이가 풀어내는 ‘B급 정서’의 정체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싸이가 초대박을 쳤다. 올 초 싸이가 직접 작사ㆍ작곡한 ‘강남스타일’이 해외에서 이렇게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올지 아무도 몰랐다. 요즘 유튜브에 올려진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외국인의 클릭수가 더 많다.

제작사는 “처음 ‘강남스타일’의 멜로디와 안무를 접하고 뜨겠다는 생각 정도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화제가 될지 몰랐다. 해외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신기하고 좋을 뿐이다”고 말했다.

기자는 2001년 싸이가 1집을 내놓은 지 석 달 만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의 나이 24살때다. 당시 싸이에게 인기를 얻는 비결에 대해 물었더니 “보통 ‘재수’라고 이야기합니다. 실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가 가장 중요하고 시류를 내다보는 눈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의 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문화적으로 소통을 이뤄내는 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도의 소통능력을 지녔다는 얘기다.


▶싸이의 소통스타일, ‘B급 정서’=싸이의 문화적 소통방식을 한번 보자. 한 마디로 정의하면 ‘B급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싼티’나 저렴 콘텐츠가 아니다. B급 정서는 풍자와는 다르다. ‘개그콘서트’에서 자주 보여주는 풍자는 독창적인 표현방식으로 특정 대상에게 쏟아붓는 것이다. B급 정서는 마이너에게 통쾌함을 주면서 공감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가수)과 내(대중)가 같은 처지와 입장이라고 생각하게 한다.(실제 그렇지는 않지만)

사실 B급 정서는 사회 비판의 정서를 담고 있고 억눌린 마이너들을 결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원래 B급 영화도 서열주의를 거부하고 개성을 찬미하는 ‘작가주의’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

가령, 정형돈이 한동안 웃기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 자신이 “그래 나 못 웃긴다. 어쩔래”라고 자학개그를 한 적이 있다. 이 말에서 못 웃기는 사람들끼리, 다시 말해 마이너들이 지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심정적 언덕이 생긴다. ‘못 웃기는 사람’은 ‘공부 못하는 사람’ ‘얼굴이 못생긴 사람’ ‘돈이 없는 사람’등으로 대체 가능하다.

지금은 시대 상황이 B급 정서를 요구한다. 다들 힘들어 하고 요즘은 날씨도 더워 죽겠다. 돈과 권력과 끗발에 눌리고 더위에도 치이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B급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누가 B급 정서로 자신을 대변해 줄 때 통쾌하고 시원하고 후련해져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개가수(개그맨 가수)’가 뜬 이유도 이와 비슷한 기반에 놓여 있다. 80~90%는 웃기고 흥겹고, 10% 정도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올림픽대로’의 마지막 가사는 ‘올림픽대로가 막혀요. 지금은 어딜 가나 막혀요/내 인생도 니 인생도 우리 인생도 다 막혀요’다. ‘용감한 녀석들’이 불러 크게 히트한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에도 ‘여자친구 좋아하는 식스팩을 준비해. 식스팩 있어도 못생기면 꽝!/밤새워 써내려간 손편지를 준비해. 차라리 편지봉투 안에 상품권을 넣어라!’라는 반전 가사가 있다.

강남스타일에 있는 ‘나는 사나이/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그런 사나이’라는 표현도 음미해 볼 만하다.

▶기성문화에 도전, 전복하지만 삼류 스타일로=싸이는 데뷔 때 아이돌 가수의 립싱크를 비판했다. 임팩트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도전과 저항, 전복의 미학을 담고 있었다. ‘판 틀려거든 입이나 맞추든가, 뻥치려거든 침이나 바르든가’와 같은 가사는 립싱크하는 가요계를 너머 비판 대상을 위선적 사회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집 타이틀곡 ‘Right now’에서는 ‘오 매우 공격적인 음악, 뭐야 이거 내 목에 기계소리 빼’라며 기계음(오토튠) 사용을 경계했다.

싸이 이전에도 대중문화나 대중음악을 통한 주류문화에 대한 도전이나 전복의 시도가 있었다. 삐삐밴드 등 적지 않은 인디밴드가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을 담아냈다. 하지만 이들은 강한 자의식에 빠지기도 하는 등 소수 취향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싸이는 높이를 많이 낮췄다. 음반을 내는 건 팔기 위해 소비자 기호를 고려하는 장사라고 말한다. 대중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스스로 삼류를 표방했고 삼류에 대한 개념도 확실했다. “나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삼류다. 일류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학벌이나 지연 때문에 배타적이지도 않다.” 싸이는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B급의 당당함을 내세운다. 대중은 이런 싸이를 수용하는 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데 싸이는 특히 이런 콘텐츠를 전달하는 힘이 매우 강하다. 싸이의 외모는 강남스타일이 아닌 강북스타일이지만, 식스팩도 없는 물살 배를 자랑하지만, 옷도 광대 같은 의상을 입고 마구 흔들어대지만, 처음부터 딴따라나 삼류 연예인을 표방해 ‘엽기’니 ‘사이코’나 ‘또라이’로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일관성을 갖췄고 대중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반전 요소도 충분히 지녔다.

싸이가 서민적인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부잣집 아들이며 버클리 음대에서 수학한 뮤지션이요 아티스트다. 싸이와 인터뷰를 해 보면 매우 지적임을 알 수 있다. ‘싼티’를 표방하지만 노래를 작사ㆍ작곡하며 프로듀싱까지 직접 한다.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와 서인영의 ‘신데렐라’,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를 작곡하기도 했다.

또 그의 춤은 ‘날로 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엄청난 체력을 요한다. 그의 공연을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의 강호동 못지않는 에너자이저이며, 정글의 법칙서 나오는 ‘달인’ 김병만급 노동량을 연상시킨다. 싸이의 콘서트를 보는 사람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K팝을 바라보는 외국 시선의 새로움=싸이가 철저한 서비스맨의 정신에 입각해 흥(興)의 음악을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도 통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은 초심으로 돌아간 것, 한마디로 ‘양스러움’(양아치)이라고 했다. 그러니 음악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강렬한 비트와 감칠맛 나는 멜로디, 직설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클럽 분위기의 댄스곡. 이런 일렉트로팝 또는 신스팝의 반복되는 ‘신디사이저 리프’는 외국인에게도 중독성을 동반한다.

1980년대 후반 나이트클럽에서 유행하던 말춤을 추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우리에게는 복고풍 스타일로 인식되지만 코믹한 말춤댄스를 추는 싸이가 서양인에게는 독특하고 코믹하게 느껴진다. ‘노는 음악’은 어디에나 통하는 모양이다.

싸이는 문화적으로 모든 걸 수용한다. 뮤직비디오에는 걸그룹 포미닛의 멤버 현아가 나오고, 유재석도 한몫 한다. 노홍철의 저질댄스가 문화적으로 포장만 되면 충분히 수출 가능한 콘텐츠임도 알 수 있다.

싸이의 음악은 K-팝 한류의 새로움으로 다가간다. 아이돌 가수 위주로 수출되는 K-팝 한류가 빠질 수밖에 없는 음악의 다양성 부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바라보는 K-팝 스타일에서 한 가지 새로운 목록을 추가했다. 그들에게 K-팝에는 보아 스타일이 있고 원더걸스 스타일도 있고, 싸이 스타일도 생겼다. 바야흐로 B급이 A급을 누르기도 하는 세상이 아닌가.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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