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커버스토리> 스포츠로 본 한·일 관계
국민엔 대리만족의 場
선수엔 기회이자 위기
한일전은 ‘독이 든 성배’



“일본에 패하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습니다.”

스포츠는 때론 한 국가에 국방이나 외교보다 더 절박한 절체절명의 의미를 갖는다.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거로 얽혀 있는 유럽이 그렇고, 내전과 민족 갈등으로 얼룩진 지중해와 중동 국가들 역시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이 36년간 조선 땅을 유린한 일본을 영원히 곱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제 용서하자, 잊을 때도 됐다는 말은 가해자인 일본이나 정치인들에게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보통 국민에게 강요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외교적으로 갈등이 있다고 스포츠 경기에서 이를 표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갈등으로 1972년 뮌헨 올림픽을 피로 얼룩지게 만든 ‘검은 9월단’ 사건은 다시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이다. 스포츠에서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은 무조건 옳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승패를 통해 국민이 대리만족을 얻거나 울고 웃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정서의 발현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축구대회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일본과의 경기를 앞뒀던 한국팀〈사진〉은 국민의 반일 감정과 이승만 대통령의 혐일주의(물론 통치를 위해선 친일파를 두루 중용했지만)로 인해 출전조차 못할 뻔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유형 한국팀 감독은 이 대통령에게 “패하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사무라이 같은 다짐을 하고서야 경기를 할 수 있었고, 마침내 본선 티켓을 따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는 대다수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국민적 스포츠 행사가 됐다. 이 맞대결에서 이기는 감독과 선수는 영웅이 됐고, 반대로 패하는 쪽은 ‘옷’을 벗거나 견디기 힘든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야구 한일전에서 이긴 선수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것도 단순한 야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선수들이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골프에서도 우리보다 몇 십년 앞섰던 일본을 한ㆍ일 대항전에서 잇따라 꺾고 있다. 한국의 저변과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 외에 선수들의 각오가 훨씬 비장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겐 대리만족의 장(場), 선수들에겐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는 ‘독이 든 성배’가 바로 스포츠에서의 한일전이 아닐까. 

<김성진 기자>
/withyj2@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