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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범인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폭염도 얼려버릴 피서지 인기 추리소설
제프리 디버의 ‘도로변 십자가’
속도감있는 전개·반전 묘미
사이버범죄·개인정보 유출 다뤄

故 이수현씨 모델 된 ‘제노사이드’
일본 우익의 그릇된 사고 비판
일본내 역사논쟁 불러 일으켜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에 국민의 알뜰 피서1번지로 각광받는 곳은 단연 서점과 도서관이다. 사실 더위 잊기에 독서삼매경만한 게 없다. 그 중 추리소설은 여름독서의 꽃. 올여름 추리소설 시장은 그 어느 해보다 뜨겁다. 지난해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정유정의 ‘7년의 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올여름 독서시장은 추리물이 대세다. 추리소설 강세인 일본을 비롯해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마니아들을 반긴다. 추리소설의 공식은 살인과 탐정, 반전의 게임. 범죄소설이지만 유혈낭자함보다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범인을 찾아가는 구성이 재미의 본질이다. 독자는 나름대로 범인을 찾아가며 소설 속 주인공과 내기를 한다.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인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독일 출신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여기에 일반 소설적 재미까지 더한다. 주인공들의 사랑과 인간적 결함 등의 서사가 범인과 얽히면서 색다른 감동을 준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북폴리오)는 남편과 이혼한 후 형사로 복직한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와 강력반장 보덴슈타인이 부장검사의 자살과 두 번째 희생자인 이자벨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음모를 그린다. 넬레 노이하우스 특유의 섬세한 묘사, 사소한 실수나 오해가 불러오는 거대한 비극의 쓰림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독일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관찰자’(뿔)는 지난해 12월 출간돼 한 달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화제작. 독특한 소재와 박진감 넘치는 구성, 깊이 있는 캐릭터로 독일 미스터리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을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남자의 주변에서 여성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다. 새하얗게 내린 차디찬 눈 속에서 하나둘 늘어가는 희생자들과 그 곁에서 미소 짓고 있는 범인,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수상한 사립 탐정과 살기 위해 처절하고 절박한 사투를 벌이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긴장감 넘치게 그려진다. 

지난해 몇몇 추리소설이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올여름 서점가엔 각국의 대표급 추리소설들이 쏟아져 나와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다. 깊은 맛이 나는 독일산 추리, 박진감 넘치는 미국산, 쫄깃쫄깃한 이탈리아산까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를 잇는 이탈리아 대표적 역사추리소설 작가 줄리오 레오니의 ‘죽음의 법칙’(문학세계사)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들을 둘러싼 죽음의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빛으로 둘러싸인 르네상스 세계에 가려진 어둠 속 비교(秘敎)와 신비주의, 끔찍한 연쇄살인을 지적 탐색과 실존인물들 속에 배치시켜 독특한 실감을 제공한다. 사건은 무슨 이야기인가를 인쇄해 퍼트리려 한 남자가 인쇄기에 끼여 찢긴 참혹한 죽음에서 시작한다.

스릴러계의 거장 제프리 디버의 ‘도로변 십자가’(비채)는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 등 사이버 범죄가 판치는 사이버월드가 한 축을 이룬다. 인적이 뜸한 도로변에 세워진 십자가와 죽음들.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만을 찾아 교묘히 접근하는 범인이 희생자를 물색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온라인 블로그. 모두가 범인 같고 동시에 범인일 리 없게 만드는 디버 스타일,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반전의 묘미가 압권이다.

일본 추리 필독서로 꼽히는 에도가와 란포상에 빛나는 ‘13계단’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황금가지)는 고 이수현 씨를 모델로 한 한국 유학생의 활약과 한국의 정 등 한국에 대한 얘기가 들어있다. 특히 한ㆍ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그릇된 사고를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내 일본 내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작가는 이와 관련, “이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공정성’이었다. 여러 제노사이드를 작품에서 그리면서 일본인의 과거에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과의 관례를 제대로 그려야만 했다”고 밝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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