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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 양춘병> 정치의 계절이 오면 자세 낮추는 금융사
대선주자들 잇단 경제민주화 구호
금융당국 서민금융 살리기 맞장구
대출금리 낮추고 불공정 약관 시정
매번 선거철에만 ‘착한 금융’ 변신


탐욕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융사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있다. 은행들은 자금난에 빠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앞다퉈 대출금리를 낮추고, 빚에 허덕이는 연체자의 채무를 조정해주고 있다.

그동안 쉬쉬하며 유지해왔던 공급자 위주의 불공정 약관도 대폭 손보기로 했다. 카드사들은 오랜 논쟁 끝에 가맹점 카드수수료를, 보험사들은 올 상반기에 한 차례 내렸던 자동차보험료를 올해 안에 각각 인하한다.

경기침체 여파로 업종별로 지난 2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30% 급감했지만, 금융권이 추가로 조 단위의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은행들은 올 상반기에 대학생 학자금 전환 대출을 위해 500억원을 갹출했으며, 청년창업지원펀드 조성금으로 앞으로 3년간 5000억원을 출연키로 했다. 서민을 위한 정책대출 규모는 연 3조원에서 4조원으로 늘렸다. 카드사들은 기프트카드 잔액과 소멸된 포인트 등을 활용해 연 2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한다. 보험업계도 회원사 갹출금을 모아 각종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도미노 부실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커졌다”면서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감안한 금융권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속 시원한 설명과도 거리가 멀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조원의 순이익을 거두고서도 서민금융에는 데면데면했던 금융사들이 아닌가.

더군다나 지금은 대선을 4개월 앞둔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주자들의 ‘경제민주화’ 구호 앞에 금융당국이 ‘서민금융 살리기’ 정책으로 맞장구치고, 당국의 정책 기조에 민감한 일선업계가 ‘착한 금융사’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신 실무를 담당하는 한 부장급 인사는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대출금리를 경쟁적으로 낮추고, 시도 때도 없이 기부금을 갹출하는 것이 부실의 부메랑이 될까 우려된다”면서 “금융권의 공공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특정 시기에 서민과 사회공헌이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중에서는 “해마다 대선이 열린다면 아마도 금융사들은 모두 공기업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푸념도 들린다.

시장이 불공정한 탐욕을 부릴 때 채찍을 드는 것은 금융당국의 책무다. 서민금융에 초점을 맞춘 정책 기조 역시 시대 상황에 부합한다. 그동안 감독과 규제에 소홀했다면 지금이라도 서민의 편에서 두 눈을 부릅뜨는 것이 맞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시기에 유독 채찍의 강도가 세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이런 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순간만 잘 모면하자. 내년 이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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