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지난달 31일 검찰 출석은 말그대로 ‘전격적’이었다. 30일과 31일 이어진 회의에서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이라곤 ‘심사숙고하겠다’는 말이 전부. 그 ‘심사숙고’의 끝이 검찰 출석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했던 인사는 많지 않았다. 장고 끝 ‘고독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은 ‘선당후사’라는 명분과 ‘민주당의 단결’ 그리고 ‘8월 임시국회 소집’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거둔 행보로 평가된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출석 배경에 대해 ‘8월 민생국회를 위해’라고 밝혔고 자신의 혐의에 대해선 ‘억울하다’고 했다. 특히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으로 민주당은 오랜만에 ‘단결’했다. 1일 새벽 1시 20분께 서초동 대검청사 앞엔 약 60명의 의원들과 당직자 100여명이 박 원내대표를 기다렸다. ‘고독한 검투사’ 박 원내대표의 지지자들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황당한 의혹에 대해 충분히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갔다. 검찰은 이미 “증거는 충분하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태. 일각에선 검찰이 야당 사령탑을 불과 8000만원 받은 혐의로 불렀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다른 ‘히든 카드’를 숨겨뒀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장 한명숙 전 총리 기소 사건이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로 판명된 가운데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가 또다시 헛물을 켤 경우 ‘야당탄압’이라는 여론이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거셀 전망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뭔가를 더 가지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이 때문에 나온다.
정치권에선 올해 초 검찰이 미국으로 건너가 기소중지됐던 한 인사를 불러 ‘플리바기닝’을 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해당 인사는 검찰조사를 받고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보이는 자신감의 배경도 ‘충분한 준비’ 덕분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 발표 직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새누리당도 검찰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국회 개원 조건이었던 ‘내곡동 특검’과 ‘불법사찰 국정조사’에 대해 더 이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수가 없게 됐다. 만에 하나 박 원내대표가 무죄를 무죄를 받게 되면 검찰과 함께 ‘야당탄압’이라는 비난 여론의 공동 부담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박 원내대표와 검찰의 질긴 악연은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원내대표는 당시 금호그룹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3년간 복역했다. 사면복권된 박 원내대표는 18대 국회의원이 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켜 검찰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1진1퇴’가 반복된 것. 이제 2차전이다. 박 원내대표는 ‘목숨’을, 검찰은 ‘명예’를 내걸었다. 양측모두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벼랑끝에 서게 됐다.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혈투’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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