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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 파도·바람 소리 품은 건축물, 자연이 되다
④ 건축물, 자연과 하나가 되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1923년 제창한 ‘근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가운데 ‘필로티(pilotis)’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건물이 땅 위의 일정 면적을 독차지하는 폐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건물을 기둥으로 받쳐 올려 일정 높이의 지상층을 그대로 비워두는 것이다. 그 대신 이 공간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바람과 햇빛이 통과해서 시선을 가리지 않게 하자는 주장이다. 필로티 이론은 이후 아파트, 빌딩, 다세대주택 등 다양한 곳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일반적인 이론이 됐다.

그의 이론이 현 시점에서 큰 시사점을 가지게 된 이유는 ‘건축물은 자연과 조화롭게 세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현대 건축물의 자연파괴를 미리 내다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서구를 제외한 세계에서 산업화와 근대화는 곧 서구화와 동의어였다. 그것은 미개발의 무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문명세계로 진입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았다. 이런 서구를 모델로 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시 공간의 현실. 그래서 현 도시건축의 가장 큰 문제를 인간과 환경의 분리로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과연 건축은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근본적은 물음에 근ㆍ현대 건축의 큰 흐름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자연을 극복과 경쟁의 존재로 여기는 데서 주변 자연의 일부로 건축물이 흡수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인간과 환경의 분리를 가속화시켰던 건축물이 변하고 있다. 건축물은 자연과 조화롭게 세워야 한다는 철학이 널리 퍼져나가며 자연과 공존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건축물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섭지의 바다를 끌어들여 설계한 제주도의 글라스하우스 전경.

대표적 건축가로 꼽히는 이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프로복서 출신으로, 독학으로 건축에 입문해 ‘건축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등 건축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의 건축은 햇빛, 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를 건축물에 그대로 끌어들이면서, 최고의 단순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그의 건축물은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바꿔 놓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연과 하나가 된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이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따지는 안도 다다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은 섬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런데 이들 건물은 모두 제각각으로 생겼다. 서로서로가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아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그가 왜 건물 모두를 제각각으로 설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선착장 주변이나 산 정상에 자리 잡은 미술관들의 모양이 모두 이 섬의 모양을 따라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었다. 각각의 건축물은 자신들만의 강한 개성을 내뿜지만, 이것은 건축가의 의도가 아닌 섬의 모양에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안도 다다오의 손길이 담긴 건축물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안도 다다오가 섭지의 바다를 끌어들여 설계한 ‘글라스하우스’와 명상센터인 ‘지니어스 로사이’<작은 사진>는 자연과 건축물의 구분이 사라져 자연에 안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특히 지니어스 로사이에는 거대한 벽에 바람의 통로를 내고는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액자처럼 볼 수 있게 한 멋진 작품이 있다.

최근 절정으로 치닫는 여수 엑스포 행사장 인근에도 자연과의 공존을 모토로 한 건축물이 최근 완공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GS칼텍스와 여수시가 조성한 문화예술공원 ‘예울마루’는 건물이 없는 것 같은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외부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유리로 된 지붕뿐이다. 주변 환경과의 자연스런 조화를 위해 외부로는 유리 지붕의 모습만 드러나 있고 주요 공간들은 지하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전체 이미지는 망마산에서 계곡이 만들어져 바다로 들어가는 물의 흐름을 연상케 한다. 또 태양전지 시스템을 갖춰 전기를 일부 조달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친환경 건축설계로 유명한 프랑스의 도미니크 페로가 직접 설계했다. 

<정순식 기자>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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