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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끌려가지 말고 … 진혁아! 자신감 가지고 달려라”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이봉주 키즈’ 정진혁에게 보내는 편지
초반 과감하게 선두그룹에 서야
뒤처져 소극적으로 달리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경기를 리드하길


“그저 후회없이 싸워줬으면 해요. 부담은 늘 있죠. 전 애틀랜타 때 병역문제도 걸려 있어서 ‘이것뿐이다’라는 절실함이 컸어요. 그런데 그게 압박이 되면 스스로에게 지고 마는 거예요. 털어내는 방법? 딱히 없어요.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밖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2) 손기정기념재단 이사가 런던 올림픽에 나서는 후배 선수들을 격려했다. 특히 그는 ‘이봉주 키즈’로 불리는 정진혁(22ㆍ건국대) 선수에게는 마라톤 국가대표 선배답게 세세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진혁이가 자신감을 가지고 달렸으면 좋겠어요. 끌려가지 말고, 과감하게 선두그룹에 서야 해요. 축 처져서 소극적으로 달리지 말고, 경기를 리드해야 합니다.”

다음달 초 아예 런던으로 원정 응원을 떠날 예정이라는 그를 지난 24일 경기도 화성 자택에서 만났다. 거실 벽 한쪽에는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결승지점에 골인하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며칠 전에 경기 영상을 다시 봤어요. 3등이 바로 등 뒤에 쫓아오고 있더라고요. 어휴, 아슬아슬했던 순간이죠. 1~3등 3명이 거의 동시에 운동장에 들어왔던 게 다시 떠올랐어요, 하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은메달을 따냈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회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들고 있는 운동화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신었던 것으로 “애틀랜타 때 신발은 어디에 뒀는지 잘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아쉽게 금메달은 놓쳤지만, 98ㆍ2002 아시안게임 우승,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 이봉주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와 함께 국내 마라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2009년까지 20여년의 세월 동안 42.195㎞ 풀코스만 41회 완주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올림픽 시즌이 돌아오면 지나간 경기들에 대한 추억과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특히 온 국민이 함께 탄식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그에게도 가장 아쉬운 경기이다.

“그땐 몸 상태도 최상이었고, 모든 상황이 좋았어요. 그런데 넘어지는 바람에…. ‘아, 메달은 결국 하늘이 내리는 거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메달은 하늘이 내리지만, 올림픽을 위해 4년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마라톤계에는 그 ‘사람’ 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은 아마추어대회가 열리죠. 생활체육으로 마라톤 저변은 굉장히 확대됐는데, 정작 선수 수급은 힘들어요. 어릴 때부터 잘 뛰고, 운동신경 좋으면 대부분 축구나 야구로 가버리니까, 육상에서 대형 선수가 나오지 못해요.”

그래서 마흔이 되도록 ‘달려온’ 이봉주의 마라톤 인생은 황영조의 이른 은퇴와 맞물리며 국내 마라톤계를 홀로 짊어져온 시간이기도 하다. “세대가 바뀌었잖아요. 선호하는 운동도 바뀌게 마련이죠. 모든 스포츠가 다 힘들지만, 기록경기인 마라톤이 지금 세대들에게 어필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마라톤 인기가 시들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현하면서도 그는 후배들이 스포츠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감독은 왕이었어요.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해야 할 정도로…. 요즘 신세대들은 자기주장이 강해서, 지도자들 고충도 만만치 않더군요.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즐기면서 운동하잖아요? 연습 중에 귀에다 이어폰 꽂고 신나게 흔들면서 달리는 모습도 봤는데, 전 상상도 못했어요. 물론 그땐 MP3도 없었지만, 하하.”

훈련 중 음악 감상은 꿈도 꾼 적 없다던 이봉주는 얼마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춤 실력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국민 마라토너’의 요염한 댄스 장면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는데, 정작 그는 “다신 안 추겠다”고 한다.

“아유, 마라톤보다 힘들어요. 일주일 내내 춤만 췄는데, 더는 못하겠어요.”

그는 곧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통통 튀는 신세대 후배들을 현지에서 직접 응원하기 위해서다. 즐겁게 운동하는 만큼 ‘상상 이상’의 성과를 기대한다고.

“저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양궁 사격 배드민턴 등 온 국민이 기대하는 메달밭 경기가 관심사예요. 아, 또 박태환 선수 저도 응원합니다, 파이팅!”(웃음) 

<박동미 기자>
/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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