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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선율, 그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재즈 선구자 류복성의 ‘소쿨재즈’ 콘서트 내달 24일부터…55년전 미8군 쇼서 시작한 소년의 재즈인생 담아내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 오며 꾸준히 자신의 일에 심혈을 기울여 온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17세 때부터 55년 동안 재즈 하나만을 보고 살아 온 류복성은 ‘재즈의 명장(名匠)’이다.

류복성이 다음 달 24일 그의 음악 인생 55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연다. 젊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그가 보여 주는 관록의 무대다. 나이가 무색하게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류복성을 지난 20일 서울 구의동 그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로 다시 주목받은 관록의 재즈 명장들. 그들이 느끼는 과거와 지금의 삶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물론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역시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국 재즈를 본격적으로 태동시켰다는 의미에서 재즈 1세대라 칭해진 이들 뮤지션 중 류복성은 신관웅, 강대관, 조상국 등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TV에도 많이 출연하며 그나마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봉고, 팀발레스, 콩가, 젬베 등의 남미ㆍ아프리카 악기를 수십년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타악기를 다루는 데 그 만한 이를 찾기 어렵다.

류복성이 다음 달 24일 재즈 인생 55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를 연다. 드라마‘ 수사반장’의 봉고 연주로 유명한 그는 아직도 개구쟁이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하지만 류복성은 결코 스스로를 선구자,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재즈 1세대가 아닌 3세대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이전에도 분명 재즈음악을 한 선배들이 있었다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람이란 의미로 1세대”라고 좁혀 말했다.

류복성은 1958년 미8군 쇼에 입단하면서 재즈음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고집스럽게 오리지널 재즈만 하다가 라틴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68년 미국의 타악기 연주자인 어기 콜론(Augie Colon)을 만나면서부터다. 어기 콜론은 봉고나 콩가 같은 라틴 퍼커션(타악기) 대가로 미국 국무성 위문단 USO쇼가 주한미군 위문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연주자로 함께 들어왔다. 당시 지인이 어기 콜론의 반주자로 참가하면서 그에게 어기 콜론을 소개했다. 그는 콜론에게 “재즈드러머인데 봉고 소리가 너무 매력이 있어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기 콜론은 6개월간 한국에 체류하며 그에게 공짜 레슨을 시켜줬다. 그는 “기회가 좋았던 거지. 돈 안들이고 배우니 운도 좋았던 거고”라며 웃었다.

그에 따르면 라틴재즈는 라틴리듬과 재즈가 결합한 것. “재즈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리듬이 흥겹고 지루하지 않다”고 그는 라틴재즈를 예찬한다.

봉고와 콩가는 류복성의 트레이드 마크다. 봉고, 콩가, 젬베와 같이 핸드드러밍(손으로 때리는) 하는 악기는 드럼과 다른 주법을 익혀야 하고 음악을 더 많이 듣고 훈련이 필요하다. 드럼보다 봉고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도 핸드드러밍 연주의 모든 것이 그의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습실에 수십대의 악기가 있지만 재즈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 악기를 손에 넣는 게 쉽지 않았다.

1970년 한 악기점에 팀발레스란 새로운 악기가 새로 들어와 그의 눈에 띄었다. 폴이란 회사에서 만든 일제 팀발레스. 연주하고 싶었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악기를 사는 건 무리였다. 그때 그를 도와준 이가 파라다이스그룹의 전낙원 회장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데 사 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전 회장이 흔쾌히 도움을 줬다. 아직도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사해 한다는 그는 전 회장의 아들 필립 얘기를 꺼내면서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하고도 대를 이어 받은 그가 대단하다며 흐뭇해 했다.

그런 질기고 오랜 음악생활을 이어 온 그가 올해는 재즈음악인생 55주년을 맞아 한밤의 ‘소쿨재즈’ 콘서트를 연다. 그가 이끄는 류복성 재즈올스타 밴드와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과 함께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열정을 이어 가는 것이다.

그에게 55주년 기념 콘서트의 의미를 물었더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리”라고 했다. 콘서트의 종류를 돈을 버는 콘서트, 즐거움을 주는 콘서트,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콘서트란 3가지로 정의한 그는 “넉넉지 않은 사람들도 나의 콘서트를 즐기며 희망을 얻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류복성은 전문 재즈 프로모션이 없는 한국 음악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마음같아선)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서 콘서트를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날 위해 이렇게 스폰서 해서 기념공연을 열어 줄 사람도 없다”며 공연 기획을 주도한 남무성 감독에게 감사해 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대표곡인 ‘류복성의 수사반장’을 비롯, 그가 직접 한국말로 작사한 ‘모 베터 블루스(사랑하고 싶다)’, ‘어 나이트 인 튀니지아(A Night In Tunisia)’ 등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웅산, 이정식과는 ‘테이크 파이브(Take5)’를 함께한다. 류복성은 이번 무대가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가 콘서트를 안하면 죽은 줄로 안다”며 아직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그는 아직도 넉넉하다면 어린 후배들을 위해 콘서트장, 클럽, 전문학교 등이 결합한 재즈센터를 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음악을 하면서도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끝까지 한우물을 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에 대해 묻자 그는 “55년 음악을 하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퀸시존스나 맥스로치 같은 사람이 되려면 100살까지 해도 따라갈 수 없다”며 예의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또 한 번 지어보였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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