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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시탈'목단, ‘민폐 캐릭터'에서 탈피할까?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 KBS 수목극 ‘각시탈’은 1974년에 나온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이다. 드라마로서 ‘각시탈’의 강점은 내용이 분명하고 심플하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한국형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피아(彼我)가 분명하다. 각시탈의 액션활극은 식민 치하 억압받던 우리 민족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수 있다. 동시에 만화가 나왔던 7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민족과 민중의 입장 대변자인 ‘각시탈’은 여전히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각시탈’은 고종을 망명시키는 계획을 짜는 등의 목적으로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가던 강토의 아버지 이선(이일재)을 5명의 친일세력에 의해 잃어버린 슬픈 가족사에서 출발했다. 이후 이선의 큰아들이자 1대 각시탈인 강산(신현준)은 일경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독립운동이 자신의 가정을 망쳤다고 여기는 그의 동생 강토(주원)는 일본 순사가 돼 독립인사를 잡는 일본 앞잡이가 됐다.

하지만 강토는 1대 각시탈을 잡는 과정에서 각시탈이 자신의 친형임을 알고, 낮에는 일본 순사인 사토 히로시로, 밤에는 2대 각시탈로 암약한다. 그래서 일 제국주의는 물론이고 일본 극우단체 기쇼카이와도 연결된 친일파 5인을 처단하고 있다. 일본제국의 경찰로 일하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한국인에게 좋은 정보를 흘려줄 수 있었다. ‘한일합방 22주년 기념식’에서 독립군 대장 담사리(전노민)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현장에 입장할 수 있었던 것과 이곳에 폭탄을 투척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강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순사 신분의 강토는 고문을 받는 담사리에게 “이렇게 산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냐”고 묻자, 담사리는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다. 바위는 세월이 가면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언젠가 그 모래를 밟고 계란 속에서 깨어날 병아리가 있을 거야. 일본제국주의의 폭력도 계란 하나를 이길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올걸세”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바로 각시탈의 명언이 됐다.

일본인이지만 조선에서 자라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기무라 순지(박기웅)와 우정을 나눈 강토의 운명적인 대결도 ‘각시탈’의 관전 포인트다. 친형을 각시탈에게 잃은 순지는 종로경찰서 경부가 돼 각시탈을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 각시탈은 친구인 강토다. 이 둘의 비극적인 대결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관심거리다.

한국 전통무예인 택견에 능한 각시탈은 한국인을 착취하는 조선총독부의 일본인과 친일파를 사정없이 혼내주는 게 후련하지만 이것만으로는 2012년 시청자 취향을 충족시키기는 힘들다. 만족주의가 잘 먹히던 70년대 신파적 정서와 지금의 ‘쿨’한 정서는 차이가 많다. 각색과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제작진은 원작에 없는 강토와 목단(진세연)의 애절한 멜로를 집어넣었다. 독립군 대장 담사리의 딸인 목단은 극동서커스 단원으로 신분을 위장, 독립활동을 하는 경성판 캔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찾다 사경을 헤맬 때 자신을 구해준 도련님(강토)을 재회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아직 강토와 목단의 멜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목단이 자주 붙잡히고 별 역할을 못하는 등 ‘민폐’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어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목단은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지만 일경에 체포될 때마다 각시탈이 기계적으로 구출해주는 장면은 이제 식상해졌다.

각시탈의 통쾌한 활약이 다람쥐 쳇바퀴를 계속 돌리는 모양새가 아닌 나선형으로 힘있게 목표(결말)를 향해 쭉쭉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 각시탈의 활약을 통해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이 점을 통해 지금의 ‘보통 사람’ 시청자에게도 느끼게 하는 바가 있도록 했으면 한다.

아울러 제작비가 100억원 규모인 대작 ‘각시탈’이 일본에 수출되기 힘든데도 공영방송 KBS에서 선뜻 제작을 맡았다는 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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