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도 조금도 아랫배가 나오지 않는 20대 몸매를 유지하고 능력을 자랑하는 ‘꽃중년 F4’는 일종의 판타지다. 8회에서 이정록(이종혁)-박민숙(김정란)부부 동반 모임을 보면 이들은 또래 아저씨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민숙이 연상녀라지만 겉모습으로만 보면 이들 부부는 함께 나온 친구부부들과 10살 이상의 차이가 난다.
남자가 40대 초반이 되면 대학시절이나 미혼인 상태에서의 직장생활의 자유로움은 저장잡힌 지 오래다. 직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소신과 철학을 접어야 하고, 그럴수록 집에서는 아내와 자식에게 여유있고 살갑게 다가가기 힘들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의 4인방은 책임질 가족이 없다. 변호사 최윤(김민종)은 아내가 사별한 상태며 바람둥이 정록의 아내 민숙은 강남에 빌딩을 수십채 소유한 부자다. 그래서 이들은 소년같은 면을 유지할 수 있다.
PC방에서 게임에 열을 올리고 당구 게임비 하나에 목숨을 거는 찌질함도 보인다. 커피숍에서 소녀시대 수영을 보고는 4명 중 가장 철이 많이 든 변호사 최윤(김민종)이 달려가 춤을 추며 재롱을 떤다. 친구들과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보면 솔직히 부러울 때가 많다.
건축디자이너 김도진(장동건)은 섹시한 남성미에 까칠하며 비꼬는 말투를 자주 사용하지만 친구들과는 장난기를 발동시키는 면모도 지니고 있다. 짝사랑하는 여자 서이수(김하늘) 앞에서는 너스레와 능청을 떨다가도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고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할 줄도 안다. 또 서이수가 짝사랑한 상대 임태산(김수로)은 친구를 좋아하고 의리 있으면서도 자신의 여자에게만 잘 하는 ‘순정마초’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이들 4인방의 감성은 ‘소년‘이다. 90년초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로 하여금 20년전에 지녔던 소년의 감성을 소환한 것이다.1992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음악을 들고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들었던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세대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짓누르던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났으며 풍요속에 자라나 개인과 개성을 당당하게 주창한 ‘X세대'였다.
하지만 이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당히 찌들어버렸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이전의 당당함은 온데간데 없고 ‘낀세대'가 됐다. 그래서 남성시청자들은 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소년 같은 감성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기제일 뿐이다. 그럼 ‘신사의 품격’ 네 남자보다 머리 숱도 훨씬 적고 배도 조금 나온 이땅의 중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드라마속 남자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드라마 제목인 ‘신사‘라는 단어의 뜻 정도는 새겨봐야 할 것 같다. 중년 남자들은 힘들다. 가족을 부양하고 건강도 챙겨야 하고, 젊은 아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꼰대’도 되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 제목에 나오는 신사란 ‘꼰대’의 반대말이라 할 수 있다.
극중 김민종과 장동건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나눈다. “우리도 머잖아 중년이 될 거야” “벌써 아저씨가 됐잖아” “그래, 겁이 많아졌고, 자기변명만 늘고, 안되는 이유 100개 만들어서 합리화하고, 그걸 어른스러운 거라고 착각하고.” 이런 대사 정도는 곱씹어볼 줄 알아야 적어도 ‘신사‘나 ‘품격’을 논할 수 있는 아저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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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행하는 LH NEWS 제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