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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심상대, “나의 소설적 목표는 성리학적 인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공자님이 40대를 불혹이라 한건, 유혹이 많기 때문인데 저는 40대를 완벽한 미혹으로 보냈습니다. 공부로 치면 너무 잘한 거죠.”

2001년 단편소설 ‘미’(美)로 제46회 현대문학상을 받은 이후 12년 만에 중편소설 ‘단추’(휴먼앤북스)를 들고 돌아온 소설가 심상대(52)에 혹자는 좀 어리둥절할 수 있겠다. 다 늦게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강의실을 오가더니 또 한때는 뜬금없이 정치 주변에 눌러 앉기도 했다. 개성공단으로 출근한다는 소리가 나돌다가 어느 때부턴 그런 얘기도 꼬리를 감췄다. 그러던 그가 올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이 난데없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그 답지 않은 관념소설로 말이다. 선데이 마르시아스 심이란 필명으로 한때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단의 유랑자, 심상대가 돌아왔다. 



▶잃어버린 10년

“소설가가 10년 만에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상대에게 2000년대는 빗나간 화살처럼 아득하다. 자신을 유혹하는 세상과 짝하며 지냈던 세월이다. 90년대 그의 문학적 성취는 자못 화려했다. 김유정과 미당을 닮은 들끓는 원시성, 삶의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날것의 언어, 거창함에 빠지지 않는 휴머니즘으로 그려낸 그의 다채로운 그림을 평단은 잘 설명해내지 못했다. 2000년대 초, 그는 고려대에 시간강사로 나간 적이 있다. 교수식당에서 자주 만나던 고고미술사 교수가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미술사를 좋아하는데 공부를 못했다” 하자, 지금이라도 해보라 권했다. 그는 그 말에 아예 옆 교실로 옮겨 앉았다.

본의 아니게 정치 주변에도 오래 머물렀다. 황지우 시인이 소개해준 정동영 의원이 운영하는 정치연구소에서 5년 동안 월급받고 일했다.

2006, 2007년에는 개성공업지구 입주기업협의회 계장을 맡아 개성공단을 출퇴근했다. 그는 개성공단이야말로 한반도의 로망이라 말한다. “그런 게 10개만 있으면 통일운동도 필요없지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면서 술과 밤의 생활이 이어졌다. 대선후보로 나선 정 의원이 떨어지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10년을 엉뚱한 일 했으니 당연한 거죠. 선거의 결과보다도 세상이 싫었어요. 내맘대로 안되잖아요. 선거에 떨어지면 누구나 그런 기분 들 거예요.“

술에 찌든 나날, 그의 얼굴은 햇빛을 보지 않아 창백해져 갔다. 소설이 써질 리 만무했다. 젊은 의사는 그에게 술을 끊고 햇볕을 봐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보따리를 쌌다. 고향 강릉으로 집을 옮겼다. 어떻게든 소설을 써보려 애썼다. 따지고 보면 딴 짓을 한 10년 동안에도 그의 마음속엔 소설이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편지 쓰듯 써내려간 게 ‘단추’다.

‘단추’는 대학생 딸을 염두에 두고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싶어 쓴 작품이다.

꿈속에서 단추를 잃어버린 한 남자와 현실에서 단추를 주운 또 다른 남자의 비루한 일상과 불안, 막연한 꿈과 긍정 사이에서 흔들리며 나아가는 젊음의 통과의례를 다소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 꿈 이야기는 수수께끼 같고 난해하다.

“젊었을 때는 어려운 걸 보고 ‘뭘까’ 고민하는 게 필요하죠. 그게 청춘의 극복이고 자산이죠. 혼돈을 일부러 만들어놓은 거예요. 젊어서 다 해결하려고 하면 그게 어디 청춘인가요. 그걸 인정하고 해결하려고 고민해야 어른이 되는 거죠.“

그는 젊은 소설가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너무 양지만 걸으려고 하면 안되죠. 소설가들은 음지도 걸어보고 울퉁불퉁하고 질척질척한 길도 온다면 피해선 안되죠. 그게 인생이잖소. 소설이 인생을 그리는 거라면 피해서 무슨 소설이 되겠습니까?“

그의 소설은 이전과 달라졌다. 상황을 주절 주절 설명해나가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의 문장은 뜨겁거나 차가웠다. 이제 힘을 빼고 풀어나가는데 그 맛이 별미다. 소설이 달라졌다기보다 그가 달라졌다는 게 맞다. ‘단추’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며 그가 들려준 문장은 이렇다.

“홍련과 마주앉은 노인은 홍련에게 날이 저물었다고 일러주었고, 홍련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를 두고 ‘나이 먹은 심상대의 걸품’이라고 자평했다. “나이가 몇 살 젊었으면 이런 문장은 못 써요. 20, 30대처럼 치열하게 쓸 수 없을 뿐더러 그게 이젠 싫여.“

그의 문장론은 여기서 발아한다. 요약하자면 문장은 생리작용의 결과다. 자기 생리에 맞고 이를 제대로 옮기는 문장을 알아가는 데서 소설의 문장은 시작된다. 그걸 모르면 소설을 쓸 수 없다. 뭘 담느냐는 살아온 이력이니 자연 따라온다는 얘기다.

펄떡이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 길바닥에 쏟아부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 그는 고요하다. 소설에, 세상에 애면글면하지 않는다. 예술성, 문학성, A급, B급? 이런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충직하고자 한다. 그러니 편해졌다.

일상은 단순하다. 강원도 암자를 전전하며 오직 책읽기와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다. “돌멩이 풀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요. 새벽 공기의 맛이 다 틀려. 모든 게 축복이에요.”

40대 미혹의 세월이 그에게 남긴 선물이다.

“50대라고 왜 유혹이 없겠습니까. 술을 끊으니까 많은 유혹과 멀어지죠. 사람 만날 일도 없고 책 읽는 게 즐거워요. 책이 나를 유혹한다면 유쾌한 일 아닌가요?”



▶10대, 나는 고등학교 밴드부였다

초등학교 3학년,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는 나이지만 대개는 1년을 못간다. 수시로 바뀌는 게 그 나이다. 그런데 어린 심상대는 시종일관, 소설가가 되겠다고 벼렸다.

그 꿈을 품게 해준 이는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이다. 아버지는 그에게 한자와 한글을 가르쳤고, 4학년 때는 묵호극장에서 영화 ‘봄봄‘을 함께 봤다. 그때 아버지는 영화가 본래 소설이라 말해줬다. 그 뒤 시내에 나가 김유정의 소설집을 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춘천교대 출신 선생님이 한 분 오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짧은 글짓기를 종종 시키셨다. 그때 그는 ‘시집’이란 책을 처음 알게 됐다. 고모가 시집가는, 그런 ‘시집’이란 말만 알고 있던 시골아이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선생님은 그에게 도서관 관리를 맡겼다. 초등학교 4~6학년 때는 자유교양부에 들었다. 박정희 시대, 국가 주도 200권 고전읽기 프로젝트다. 각 학교에선 공부 좀 하는 애들을 모아 논어, 맹자, 구약, 신약, 그리스로마신화, 해동명장전 등을 읽게 하고 학교대항 시험을 치렀다. “논어, 맹자, 다 외우고 철학적 논지를 주관식으로 다 답을 했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 때문에 내가 소설가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정희 때문에 소설가가 된 거죠. 자유교양부의 긍정적 측면을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는 자유교양부 세대예요.”

중학교 시절, 공부도 제법 하고 책도 많이 읽던 그는 고등학교 진로를 놓고 적잖은 고민을 했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갈 만한 학교가 없었다. 그때 예고에 문예창작과가 있었더라면 그는 목숨 걸고라도 갔을 거라 했다. 그때 갈 수 있는 고등학교는 두 곳. 안양예고 영화과와 서울예고 미술과였다. 아버지는 공부하기 싫으니 별소리를 다한다며 더 들을 필요없다고 잘랐다. 강릉 상고에 진학했지만 마음은 딴 데서 떠돌았다. 어떻게 하면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을 쓸 수 있을까만 궁리했다. 자연 결석이 잦았다. “예술을 하고 싶지, 고등학교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담임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학교에 밴드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소설은 언제든지 쓸 수 있지만 음악은 이 기회에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가 밴드에서 분 혼은 서드 악기일망정 그를 학교에 붙들어놓았고 천상 음치인 그가 악보도 볼 줄 알고 손가락도 짚을 수 있는 정도의 음악적 소양을 갖게 했다. 해병대도 도망갈 엄청난 ‘빠따’를 맞고 얻은 수확이다.

소설쓰기 열망은 갈수록 뜨거워졌다. 대학 때, 신춘문예에 투고하기 위해 등록금을 들고 춘천으로 내려와 절 뒷방에 머물기도 했다. 돈이 떨어진 그해 겨울, 그는 목욕탕 때밀이로 나섰다. 뜨끈한 목욕탕에서 배 깔고 소설책 보는 것만한 건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는 호기롭게 춘천탕에 취직했다. 22살의 청춘은 거칠 게 없었다, 그는 소설가가 된 뒤 춘천탕을 찾았지만 이미 헐리고 없었다.

곱상했던 그는 건물 총관리인인 주인할머니와 여탕 때밀이 처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처녀의 사랑은 무지막지했고 그는 얼마 못가 추운 겨울 춘천탕을 떠나 룸살롱 웨이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금 고등학생 아들에게 담담하게 얘기한다. “나는 때밀이도 했다.”

한학자였던 큰 외숙부는 그가 소설가가 되자, 세상인심이란 게 웨이터 했다고 하면 너를 하찮게 볼 수 있으니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키셨고 얼만큼은 지켜왔다. 이젠 다르다. “세상 평판 때문에 어영부영한다면 사육당하는 거죠.”



▶이문열의 부악문원에서 1년, 그리고 책 상여

1998년 IMF가 터지면서 1년간 맡아 진행했던 케이블TV 현장 토크쇼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되자 ‘소설 쓰자’는 마음이 새롭게 생겼다. 소설가 이문열이 차린 부악문원으로 내려갔다. 선생님께 방 한칸 달라 했다. 그곳엔 선생의 지도를 받는 숙생이 8~10명 있었다. 일주일에 두어차례 해거름이면 선생은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심 작가 뭐하노?”

술 생각이 나서다. 당시 둘의 술 실력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옛날에 옆집에 살던 엉뚱한 사람 얘기하면서 낄낄거리며 웃고. 누구 흉보고, 신기한 놈 얘기하고 그렇게 폭탄주를 주고받았다. 10여잔 마셔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면 숙생들을 불렀다. “숙생들과 처음부터 같이 마시면 그애들이 취해서 재미가 없어. 우린 기본이 폭탄주니까.” 일주일에 두 차례 사모님에게 허락받고 공식적으로 치르는 술상이다.

선생은 지금 그가 술 끊은 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담배는 끊었으나 술은 여전하다. 그래도 주량은 줄었다. 그때만 해도 그나 선생이나 한창 마실 때였다.

“이문열 선생님은 밖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하고 안에서 보는 것하고 좀 달라요. 거대담론이나 엄숙주의식의 대화를 하는 걸로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주 사소한 얘기를 해요.”

둘은 문학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은 게 있다. 식성하고 농경사회애 뿌리를 둔 어린 시절이다. 가령 이런 거다. 칼국수 좋아하고 국수를 먹든, 냉면을 먹든 고추장이 있어야 한다. 그의 말마따나 완전 촌놈이다. 또 회를 못 먹는다. 대신 문어, 간고등어, 건태탕을 즐긴다.

그는 이문열 선생의 평생 지울 수 없는 ‘책상여’ 사건 앞에선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시대의 징후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날 그는 서울에 있었다. 곤지암 부근에서 차가 밀려 그 시간에 닿질 못했다. 누가 지켜줄 수 있었겠는가. “우리 마을엔 가짜 상여가 지나간 적이 없다.” 이장님 한마디는 무겁고 엄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막아서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장님이 옳았다고 그는 판단한다. 부악문원에서 탄생한 작품이 2001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미(美)’다.



▶지금은 소설 쓰는 시간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산골 암자를 찾은 건 2년 전 일이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소설 한 줄을 쓸 수 없었다. 자신의 재산이라고 올라있는 알량한 차 한 대에 9명이 주인이랍시고 나섰다. 폭설이 내린 날, 그는 골방에 앉아 꼼짝 않고 써내려갔다. 처음엔 무얼 쓰려는지 알 수 었었다. 네 명의 주인공을 따라갔다. 회장님을 대신한 대리 은둔자, 조직폭력배 출신의 바다해설사,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보컬리스트, 네 명이 폭설이 내린 강릉 시내를 돌아다니며 거렁뱅이 행색의 예수를 만나고, 전생을 기억하는 소녀도 만난다. 엔딩은 환상적이다. 보컬리스트가 천년 묵은 여우로 변한다. 금빛 꼬리를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여우를 세 명의 남자가 바라본다.

다 써넣고 나니 그때에야 그는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알게 됐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려는 게 문학이구나! 신을 구원하는 일이구나!”는 깨달음이 왔다. 네 명의 중년 남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다듬어 겨울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올가을에 장편 하나도 펴낸다.

고향 산골에 전 재산을 퍼부어 도서관을 짓는 은퇴한 노교수의 이야기다. 도서관이 완성되기 전, 노교수는 암으로 세상을 뜨고, 제자가 도서관을 완공하고자 하나 신용불량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산중 아무도 오는 이 없는 곳에 도서관은 저홀로 완공을 맞는다.

그는 왜 이런 일견 허황한 얘기들을 쓰려는 걸까.

“쾌락주의와 비도덕적 윤리가 지나치게 팽배해 있는데 시장주의에 저항하는 성리학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게 나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요.”

심상대의 소설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mee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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