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시종일관 여유롭고 진중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또 간혹 예상치 못한 유머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물들이기도 했다.
김명민은 작품 선택 시 캐릭터보다는 시나리오를 욕심내는 배우다. 그는 그동안 작품에서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던 연가시라는 독특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딱 봐서 꽂히는 작품이면 바로 선택을 하는 편이에요. 캐릭터가 아무리 좋아도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별로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캐릭터가 시나리오에 충분히 잘 녹여져 있는 작품이 끌리더라고요. 이번 영화도 그래서 선택한 거예요.”
남다른 몰입력을 소유한 배우 김명민. 그의 연기는 관객들을 흡입시키며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때문에 몇몇 대중들은 그를 강한 캐릭터만 고집하는 배우로 오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자극적이고 이슈가 됐던 부분들만 기억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계속 각인된 이미지로만 남는 것 같아요.”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고착화되는 걸 막기 위해 노력하죠. 하지만 또 어떤 인물이 두드러지게 보여진다면 그게 고정화되겠죠. 심지어 저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도 굉장히 재밌고 편하게 찍었는데, 대중분들은 제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촬영했다고 알고 계시더라니까요.(웃음)”
그에게 이번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한 작품이다. 그는 캐릭터들의 구성보다 박정우 감독의 연출력을 믿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배우로서의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조금 덜한 작품이에요. 제 분량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리 많지 않고 배우의 연기가 확 두드러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있어요. 감독이 과연 배우의 연기와 수많은 영화 속 장치들을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시킬지 너무 궁금했죠.”
이번 작품에서 만사 가족이 귀찮고 버겁기만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 재혁으로 분한 김명민의 연기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밤늦게 자신의 원수 같은 동생 재필(김동완 분)이 사온 피자를 먹음직스럽게 먹어치우는 아내(문정희 분)와 아이들에게 그만 좀 먹으라며 핀잔을 주다가도 가족이 연가시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까지. 이처럼 이 시대의 아버지를 완벽히 표현해 낸 김명민의 열연은 관객들이 잠시 고개를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워낙 호흡이 빠르다보니 가족을 대하는 가장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짜증내고 막말하다가 다시 후회하고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구하기 위해 눈물 흘리고 땀 흘리는 가장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거듭 생각했죠. 눈빛과 감정을 조절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매 작품을 접할 때마다 ‘캐릭터의 스토리’를 구상한 뒤 연기한다고 한다.
“영화는 그 사람의 인생 중 일부분만 발췌해서 보여주기 때문이죠. 배우는 그 안에서 관객들에게 캐릭터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보여줘야 해요. 그것을 잘 해내는 게 배우의 몫이죠. 저는 그래서 앞 뒤로 스토리를 다 적어가면서 생각을 하고 연기합니다. 그리고 상대 배우와도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요.”
무엇보다 이번 영화 속 김명민과 김동완의 호흡은 ‘찰떡궁합’이다. 두 사람의 끈끈한 형제애는 관객들로 하여금 또 한 번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생각하는 ‘배우’ 김동완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
“당연히 선입견은 있었죠. 신화 이미지가 너무 강했거든요. 배우의 이미지보다는 스타 이미지가 강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고 호흡을 맞춰보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금방 친해졌어요. 저에게 에너지를 많이 준 친구죠.(웃음)”
이제 막 ‘연가시’를 마친 김명민은 쉴 틈이 없다. 현재 영화 ‘간첩’ 촬영에 한창이며 하반기에는 ‘드라마의 제왕’을 통해 브라운관 복귀에 나선다. 과연 가족과 보낼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쉬는 동안에는 각종 공룡 전시회나 놀이공원에 가요. 아이도 좋아하고, 저도 그런 곳을 좋아하거든요.(웃음) 작품 활동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도 늘 곁을 지켜주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기보다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