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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의 ‘허탕’, 관객이 생각하는 그대로…
대학로에 장진답지 않은 연극이 올랐다. ‘무엇이 장진다운가’라는 질문에 딱히 답변할 수 없으면서도 작품을 접한 일부 관객들은 작품 해석에 대한 어려움과 ‘장진식의 유머’가 빠졌다는 표현으로 그를 정형화시킴과 함께 ‘허탕’이란 작품을 그의 작품리스트에서 이종(異種)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는 작품의 장면들, 작품과 얽힌 온갖 의문점들을 누군가를 대신해 해소한다는 마음으로 연극 ‘허탕’의 창조자이자 절대자인 그를 지난 28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허탕’일까. 답은 너무 간단했다. 장진 감독은 “기획력있는 제목은 아니었다”며 “당시에 갖고자 하는 실증주의적인 물음에 대한 연속적인 질문이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극 속에선 어느 누구도 답을 얻지 못해 ‘허탕’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작은 ‘들통’”이라며 “‘허탕’보다 더 심란한 작품”이라고 웃었다.



장진 감독은 “소극장에서 꾸미고 싶은대로 해 보자”며 13년 만에 다시 이 작품을 하기로 했다. 그는 관객들에게 항상 실험적인 것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5년, 1999년 까지만 해도 관객과 배우가 무대 한 방향으로만 소통했지만 이번엔 배우를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원형극장에 관객이 감옥과 같은 환경을 느낄 수 있도록 CCTV를 여러 방향으로 설치해 보여준다.

원형무대를 만들며 168석이었던 객석이 130석으로 줄어들었다. 연기하는 배우 역시 뒤돌아 발성을 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장진 감독은 이런 시도들이 감독의 창작적 욕구충족과 관객 서비스에 대한 의무감이라고 생각한다.

‘허탕’은 실은 철저히 관객들을 위한 작품이다. 결말 하나만으로도 수십가지 해석이 난무하는 이 작품은 뚜렷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명확한 답, 웃음과 재미를 요구하는 관객들에겐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한참이나 그 감동이 이어지듯 ‘허탕’은 그 감동의 연장과 함께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관객에 대한 애프터서비스에 가장 충실한 연극이다.

장진 감독은 “예전 관객과 요즘 관객이 많이 다른 것 같다”며 “1995년 초연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이런 부조리극, 드라마적 결말이 뚜렷하지 않은 것에 익숙했다”고 말했다. ‘허탕’은 그런 1990년대의 트렌드를 따라 만든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쓰던 당시 언론통폐합을 경험했고 이후 문민정권에서도 매스컴 정치가 유행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허탕’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장 감독은 세상에 지배받지 않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본질은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1세던 1992년,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며 1년 반 만에 ‘허탕’을 완성했고 그가 만든 이같은 초창기 작품들은 이후 연극이나 영화의 근간이 됐다. 장진 감독은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게 만드려고 했었고 초창기 이런 작품들이 없었다면 이후 유머와 해학이 가득한 영화나 연극 작품들은 그저 의미없는 웃음만 전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 감독은 매주 수요일 ‘수다데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지난 수다데이에서는 ‘감옥을 누가 만들었나’, ‘여주인공은 죽은건가’, 장덕배는 어떻게 됐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물론 그는 “각자가 생각하는 그게 정답”이라며 속시원한 답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가장 궁금해 하는 마지막 장면을 감독의 입장에서 “여자와 아이는 죽는다. 감옥에서 피폐해진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은 감옥을 벗어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현실에 안주한다”고 해석해줬다.

역시 인터뷰 마지막은 장진 식의 유머로 마무리됐다. 그는 “배우가 무대위에서 운명을 다하길 원하듯 죽을때까지 컴퓨터 앞에서 글 쓰다가 가고 싶다”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영화감독, 연극연출, 극작가, 배우, MC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천성 연극쟁이, 극작가로서의 혼을 놓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13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장진 감독의 연극 ‘허탕’. 장진 감독은 ‘허탕’이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사진제공=아담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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