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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근할 때 자존심은 냉장고에 줘버려!”
한국영화가 말하는 직장인 생활수칙
‘나는 공무원이다’ ‘아부의 왕’ 등
씁쓸하지만 진솔한 월급쟁이 자화상 묘사


“주영작 씨, 월급쟁이죠?”( ‘ 돈의 맛’ 중)

“아침에 나올 때 거울을 보고 자존심은 냉장고에 넣어둬라. 버리지는 말고. 뇌를 놔버려.”( ‘아부의 왕’ 중)

“흥분하면 지는 거다. 당신이 다혈질이라면 공무원이 되려는 생각은 버려라.”( ‘나는 공무원이다’ 중)

‘당신은 월급쟁이다’. 한국 영화가 말하는 직장인의 생활수칙 하나. 유능하고 전도유망한 직원은 야전(현장)보다는 흔히 회사의 로비나 상사의 사생활 뒤치다꺼리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돈의 맛’) 둘. 상사의 불의를 보면 참아라. 무조건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말씀을’이다.( ‘아부의 왕’) 셋. 평정심을 유지하라.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나는 공무원이다’·사진)

씁쓸하지만 진솔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다. 최근 한국 영화가 잇달아 월급에 인생을 건 직장인들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다뤄 눈길을 끈다. 작품 속 샐러리맨들의 삶이란 모욕과 근성, 철밥통 사이에서 벌이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돈의 맛’은 대한민국 최상류층 재벌가의 부패하고 비윤리적인 타락상을 다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공 중 하나를 대기업 회장 비서로 설정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의 ‘대리인’이고, 고액의 연봉을 받는 전도유망한 사원이지만 최후의 정체성은 역시 ‘월급쟁이’다. 창업주이자 전 회장의 노 비서는 그에게 “그래 봐야, 우린 월급쟁이 아닙니까”라고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의 신분을 확인한다. 그들은 정ㆍ관계, 법조계, 언론계에 ‘뒷돈’을 대고, 회장의 성생활을 ‘관리’하는 채홍사 역할을 하면서 날마다 ‘모욕’인 삶을 산다. 


‘아부의 왕’은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고지식한 직장인이 ‘아부의 정석’을 배워 최고의 보험영업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코미디다. ‘아부는 감성영업일 뿐’이라고 자위하지만 주인공은 때때로 엄습하는 자괴감을 피할 길 없다.

매력적인 아이디어와 재치 있는 유머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고 있는 ‘나는 공무원이다’의 주인공은 마포구청 생활공해과의 7급공무원. 매일 민원과 신고전화, 서류 작업에 시달리는 그는 “남들은 변화없는 삶이라고 하지만, 연봉 10억원의 대기업 임원이 부럽지 않고, 상식 쌓기가 취미이며, 밤마다 만나는 호동이 형, 재석이 형이 식구 같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온 민원과 신고전화를 다른 담당직원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그렇다고 자괴감과 열패감만 있을까. 주인공들은 모욕과 ‘돈의 맛’을 맞바꾸는 대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자존심을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며, 베이스기타를 잡은 ‘공무원’은 홍대 앞 인디밴드의 젊은 열정에 공무원의 금기인 ‘흥분 상태’가 돼버린다. 한국 영화가 외치는 ‘월급쟁이, 파이팅!’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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