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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깔난 글맛에 담긴 소소한 일상
하루키의 산문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흔한 재료로 정갈하고 산뜻한 요리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특별함이 있다. ‘이런 재료로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감탄하며 글맛에 또 빠지게 된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비채)는 하루키가 30년 작가생활을 돌아본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이어 내놓은 산문집이다. 주간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의 1년치 글을 묶은 것으로 담백한 글에 오하시 아유미의 판화가 어울려 눈의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하루키의 이야기 소재는 어디에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란 영화에 나오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 는 노인의 멋진 대사 같은 거다. 평소 즐겨먹는 음식과 취미, 몇몇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학창시절 추억과 낯선 이국땅에서의 깜찍한 실수담 등 시시껄렁해 보이지만 슬쩍 감성대를 건드리는 하루키는 역시 프로다. 수동기어 차량을 몰면 오토매틱보다 확실이 인생이 한 눈금 더 즐거워진다는 그의 지론, 구걸을 하더라도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1달러만 주지 않겠습니까?”하고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밀크셰이크까지 얻어먹을 수도 있다는 교훈적 얘기까지 그는 얄밉지 않게 풀어낸다.

개중엔 올림픽 중계나 신문 휴간일, 일본 프로야구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도 있다.

에세이 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글도 있다. 소설쓰기는 전공, 번역은 부업 같은 거여서 어렵지 않은데 에세이는 난감하다는 것. 나름대로 원칙을 정한 게 악담 쓰지 않기, 변명이나 자랑하지 않기, 시사적인 화제 피하기 등이다.

여전히 감각적이고 트렌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솔직한 글쓰기야말로 하루키 에세이의 미덕이 아닐까.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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