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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 “친일파 어떻게 집권세력으로 살아남았나”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조선왕 독살사건’ ‘조선왕을 말하다 1, 2’ 등의 책으로 조선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역사학자 이덕일(51)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최근 친일파를 거론하며 입을 열었다. 조선사 이전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근대사 전문가인 그가 작정하고 써내려간 ‘근대를 말하다’(역사의아침)를 통해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 이를테면 정치, 사회, 교육, 좌우 이념의 문제들 상당 부분들이 100여 년 전 이미 벌어졌던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실수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친일파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고 집권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성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비극을 맞닥뜨릴 수 있다.”

이덕일 소장은 조선 망국의 뿌리를 1623년 인조반정 체제로까지 끌어올린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과 그 후예인 노론은 조선을 시대착오적인 사회로 끌고 갔다. 사지선다형이어야 할 외교는 숭명(崇明)이란 이념으로 통일되어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여러 사상 중 하나에 불과한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만들고, 해체되어야 할 신분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서인(노론) 일당독재에 맞섰던 임금들이 유독 독살설 속에 요절했던 것처럼 숭명 역시 조선 내부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었다는 뜻이다. 

한일합방에 찬성한 내각 각료들이 일본 견학 당시 찍은 사진

이런 상황에서 ‘500년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는 매국 협상은 단 30분 만에 상황 종료되었다. 1910년 8월 16일 노론의 거두 이완용은 일본의 호우 피해를 위문한다는 표면적 핑계로 데라우치 통감을 방문했고, 합방 후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각서를 받은 두 사람은 30분 만에 통감 저택을 나왔다. 집권당이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선, 세계사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였다.

이렇게 나라를 팔아먹은 76명에 달하는 왕족과 지배층은 일제에서 주는 합방공로작과 은사금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반면에 일가족을 이끌고 북풍이 휘몰아치는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인 우당 이회영은 전 가산을 정리해 마련한 40여만 원(현재 돈으로 대략 600억 원)의 광복 자금을 갖고 6형제 일가족 60여명을 이끌고 망명길에 나섰다.

이렇듯 나라의 패망 시기에 엇갈린 판단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던 이들의 행보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 하는 자들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망국의 책임을 고종과 노론에게만 씌울 수는 없다. 하지만 2012 대선을 앞둔 이제는 진지하게 우리를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어쩌면 과거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비춰주는 거울일 것이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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