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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이해준의 ‘희망가족’> 가난에 찌든 힘겨운 일상…자립 공동체 희망을 엿보다
<6> 중세의 모습 간직한 네팔 박타푸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타임머신 타고 온듯 옛모습 고스란히
더르다르 광장은 여행자들로 북적

외곽지역은 여전히 고단한 일상 반복
2년 전에 설립된 NGO ‘비욘드-네팔’
도서관 설립·유기농식품 판매 등
취약계층 어린이·여성·농민 지원


[박타푸르(네팔)=이해준] 카트만두에서 1주일간 머물며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 가족은 동쪽으로 15㎞ 떨어진 박타푸르(Bhaktapur)로 이동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히말라야 남부의 아름다운 중세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게다가 우린 그곳의 한 비정부기구(NGO)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경제ㆍ사회 상황이 극도로 열악한 네팔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린이와 여성, 농민의 교육 및 생활환경 개선과 자립을 돕기 위해 2년 전 설립된 ‘BEYOND-Nepal(비욘드 네팔)’이라는 NGO에 주목했다. 여기에서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었다. 카트만두에서의 코이카(KOICAㆍ한국국제협력단) 방문과 마찬가지로 ‘참여형 세계여행’을 위해 기획된 방문이었다.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카트만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우리는 박타푸르에 와서 깜짝 놀랐다. 수도 카트만두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비가 잘 돼 있었다. 마을의 옛 모습도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옛 주거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개발’이 닿지 않은 땅이었다.

미로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에는 나무와 벽돌로 지은 3~4층 높이의 옛날 주택이 꽉 들어차 있었다. 건물 1층은 양모로 만든 숄을 비롯한 섬유제품에서부터 각종 불상과 힌두의 신상,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 카페가 아기자기하게 들어차 있었다. 유럽의 중세 골목 같기도 했고,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마을 같기도 했다. 이들 상가와 박타푸르 중심에 자리잡은 더르다르 광장(Durdar Square)에는 여행자, 특히 서양 여행자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의 삶은 네팔의 다른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단하고 낙후돼 있었다. 특히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어린이가 골목에 방치돼 있었다. 어린 나이에 ‘생업전선’에 뛰어든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로 조성된 박타푸르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면 찌든 가난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박타푸르의 더르다르 광장을 관광객이 둘러보고 있다.

이 박타푸르에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에서 제3세계와의 공정무역(fair trade) 활동을 했던 곰곰이(본명 정성미)가 네팔인 서칫 로찬 자(36ㆍ비욘드-네팔 대표)와 함께 NGO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성공회대학에서 NGO 공부를 한 서칫 대표는 우리 집에도 놀러오기도 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이들은 네팔에서 시민단체활동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네팔에서도 가장 험한 직업인 벽돌공장 노동자의 자녀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운영을 지원하는 일에서부터 농촌의 환경개선과 소득증대를 위한 농업기술 지원, 여성의 자립과 자립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과 보건환경 개선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성미산학교와 이우학교, 간디학교 등 대안학교는 물론 충북여성포럼과 귀농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독일 대학 등과 학생 교류, 연수생 파견, 연구 프로젝트 지원 등 다양한 국제적 네트워크 활동도 하고 있었다.

NGO의 재원 마련을 위해 만든 ‘카페 비욘드’의 유리문에 ‘하루 한 걸음’ 가족이 1주일에 걸쳐 만든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비욘드-네팔은 이러한 활동에 필요한 재정상의 뒷받침을 위해 더르다르 광장 앞에 차와 음식(특히 한국음식)을 파는 ‘카페 비욘드’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박타푸르에 1주일간 머물며 이 카페의 유리문과 내부의 알림판 등 홍보물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엔 모든 일이 어설펐다. 전문가도 아닌데다 도구도 마땅치 않아 일의 진행이 매우 더뎠다. 하지만 1주일 내내 카페에 진을 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곰곰이 및 서칫 대표와 끝없이 네팔과 NGO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일의 윤곽이 하나하나 잡혀갔다. 필자와 두 아들 창희ㆍ동희는 카페 홍보문구를 만들고 이를 유리문에 써넣는 일을 진행했다. 카페 안의 알림판을 사포질한 다음 니스칠을 해 새로 붙이는 일도 하나씩 해 나갔다. 조카 승희는 테이블에 올릴 냅킨꽂이 겸용 메뉴판 작업을 비욘드-네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고, 아내는 메뉴공책을 손으로 정성껏 써서 만드는 일을 했다.

박타푸르에 머무는 기간에 하루 날을 잡아 비욘드-네팔이 활동하는 작은 마을인 짱구나라연(Changu Narayan)을 방문했다. 박타푸르 북쪽 언덕에 자리잡아 계단식 논밭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는 이 마을의 앞길은 에베레스트 전망대 중 하나인 나가르고트(Nagarkot)로 연결돼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자가 눈에 띄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박타푸르 북쪽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자 짱구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주변에는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논과 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멀리 카트만두 밸리도 펼쳐졌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지만,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해야 하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었다. 험한 다락밭에서 기계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마을로 이어진 길은 비포장이었다. 비포장길을 한참 올라가자 마을 입구의 삼거리에 작은 도서관이 보였다. 비욘드-네팔이 주민과 협력해 만든 공간이다. 교육문제가 심각한 네팔 농촌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마을의 농가 텃밭에서는 무를 비롯한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국에서 들여와 시범재배하고 있는 딸기도 잘 자라고 있었다. 과거에는 농가도 채소를 구입해 먹었는데, 비욘드-네팔이 주민과 텃밭 가꾸기 활동을 한 이후 이제는 채소를 자급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농민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는 여성 주민이 이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럽시’라는 열매를 이용한 젤리 형태의 간식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주민이 아이디어를 내 만든 것으로, 새콤달콤한 게 먹을 만했다. 더구나 이건 농약이나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 유기농 제품 아닌가. 우리를 만난 여성 주민의 얼굴에는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평화로움과 행복감이 넘쳤다. 마을회관 뒤편에는 친환경 화장실도 눈에 띄었다. 화장실이 없는 이곳에 화장실을 만들어 환경은 물론 보건위생을 개선하고, 이를 퇴비로 활용함으로써 농작물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됐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농촌이지만, 속에선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욘드-네팔이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고, 그 핵심은 농민을 주체로 세우는 일이었다. 건물이나 도로를 지어주고 마는 식의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서칫 대표는 “속도가 늦더라도 주민이 주체가 돼야 이를 적용하고 응용해 혜택을 볼 수 있고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칫 대표는 네팔의 대학에서 법률과 사회학을 공부한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자신만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NGO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국과 네팔의 시민단체활동 여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성숙돼 있지만 네팔은 아직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이해도 낮다”고 아쉬워했다.

박타푸르 북부에 있는 짱구마을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여성 주민이 텃밭에서 가꾼 싱싱한 무를 뽑아 보이고 있다.

서칫 대표는 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의 활동을 통해 많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네팔의 농민이나 여성은 모두 흰종이처럼 순수하다”며 “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오히려 더 큰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1주일째 되는 날 우리 가족의 ‘미션’이 모두 마무리됐다. 유리문에는 새 홍보문구가 걸렸고, 알림판도 새롭게 단장됐다. 테이블엔 정성들여 만든 메뉴공책과 냅킨꽃이 겸용 메뉴판이 올려졌다. 작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보람찬 성공이었다. 앞으로 네팔인은 물론 프랑스인, 독일인, 일본인, 미국인이 이를 보고 카페를 찾고 음식을 주문할 것이라며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지막 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박타푸르 구시가지를 다시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이곳을 ‘작은 개발’의 모형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맥도널드나 KFC가 아니라 현지 주민이 정성스럽게 만든 모모(만두)나 푸리, 커리, 차오면을 파는 작은 상점이 많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세계적 브랜드가 들어와 상가를 점령하는 게 아니라, 짜이(밀크티)와 현지의 커피를 판매하는 작은 찻집과 옷가게가 상가를 형성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 서양 여행자가 박타푸르의 골목마다 득시글거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네팔의 원래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의 독특한 문화를 즐기고, 음식을 즐기고, 순박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이런 개발을 위해선 주민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것은 협동과 자조ㆍ자립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커뮤니티(공동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비욘드-네팔이 지향하는 가치가 바로 이것이다. 척박한 네팔에 작은 희망을 쏘아올리고 있는 곰곰이와 서칫의 활동이 알찬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자유기고가/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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