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20, 30대 그들은 왜 둥지를 떠나지 못하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요즘 젊은이들에게 20대 중반에 독립하는 건 꿈 같은 일이다. 직장은 물론 결혼, 출산은 더 먼 얘기다. 30대 중반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이가 찼어도 집을 떠나지 않는 젊은이의 모습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영어덜트들이 너무 응석받이로 자란 데다 힘든 일이라곤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인가.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도록 준비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 건 아닌지 자책하게 된다.

‘길어진 성인기와 자립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주제로 사회학ㆍ심리학ㆍ교육학ㆍ경제학ㆍ범죄학 등 학계를 대표하는 12명의 연구진이 8년 동안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맥아더재단의 후원 아래 ‘성인 전환기와 공공 정책에 관한 맥아더 리서치 네트워크’란 이름으로 발족된 이 연구단체는 19~34세의 젊은이들의 생활방식과 동태를 추적해 그들의 상황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변화가 가정과 국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했다. ‘미래를 결정하는 20대의 틈새 10년’에 대한 심층적이며 포괄적인, 첫 시도인 셈이다. 미국의 얘기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간발달 및 가족관계 전문가인 리처드 세터스텐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20대=독립은 끝났다!’(원제 Not Quite Adults/에코의서재)를 통해 성인기가 길어진 이유를 무엇보다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던 이정표들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성만 강조하고 서둘러 어른 흉내를 내는 건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위험만 초래하기 십상이다.
 
20대=독립은 끝났다!/리처드 세터스텐ㆍ바버라 E. 레이 지음, 이경남 옮김/에코의서재

연구자들은 대도시, 시골 농촌에 이르는 다양한 배경의 19~34세 젊은이 약 500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실시, 대학과 직장에서의 생활, 빚과 재정 상태, 대인관계, 동거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 친구, 시민으로서의 공적 생활 등을 기록했다.

분석 결과, 20대의 10년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성인으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두 부류로 갈렸다. 하나는 신중하고 계산적이지만 느긋하게 성인기로 진입하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서둘러 성인으로의 책임을 떠맡은 부류였다. 저자는 교육과 직업, 사랑과 결혼, 친구와 네트워크 등으로 나눠 분석하며 우리의 통념을 깬다.

저자는 젊은 세대의 가장 큰 변화로 교육을 꼽는다. 바꿔 말하면 부모들의 교육경쟁이다. 대학이 인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그렇다면 빚을 지면서까지 대학에 가야 할까? 저자는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20대의 투자는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은 평생의 수입을 좌우하는 중요한 투자란 얘기다.

직업을 이리저리 옮기는 데에 부모세대는 탐탁지 않아 하지만,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지면서 ‘직업쇼핑’은 20대의 특징이 됐다. 하지만 스펙을 갖춘 사람에게는 직업쇼핑이 실속 있는 전략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교육이다.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 중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결혼을 겁내 독신으로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 이른 결혼과 출산은 사회 진출에 타격을 입을 만큼 장애다. 취업의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엘리트일수록 결혼 기반이 확고한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 있고, 그 특권을 활용해 유리한 결혼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친구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도 큰 변화다. 친구가 한 사람의 운명에 개입하는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관여하는 네트워크의 규모와 형태가 직장을 구하는 문제에서 건강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요즘처럼 자식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시대에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면담 결과, 실제로 유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확실하고 지속적인 부모의 뒷받침이었다. 지나치리만큼 극성스러운 부모보다는 열의가 없는 부모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부모의 도움은 성공의 필수 요소이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저자는 본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흔히 젊은 세대를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외톨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는 불리한 여건에 있는 젊은이들의 인간관계와 지평을 넓혀주는 묘약이라는 주장이다.

세터스텐 교수는 20대의 문제가 그들만의 얘기가 아니란 걸 강조한다. 영어덜트들이 독립하기까지 걸리는 긴 세월 동안 가족이 져야 할 재정적 부담은 결국 사회 몫이기도 하다.

20대에게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의 역할을, 부모세대에게는 젊은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GPS 역할을 톡톡히 한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