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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시인, 백석은 왜 양치기가 됐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정거장에서 60리/60리 벌 길은 멀기도 했다.//가을 바다는 파랗기도 하다!/이 파란 바다에서 올라 온다-/민어, 농어, 병어, 덕재, 시왜, 칼치…가//이 길외진 개포에서/나는 늙은 사공 하나를 만났다./이제는 지나간 세월//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어든 밤 거친 바다로/배를 저어 갔다는 늙은 전사를.!//멀리 붉은 노을 속에/두부모처럼 떠 있는/그 신도라는 섬으로 가고 싶었다.”

시인 백석(白石ㆍ1912~1995)이 1957년 9월 19일 북한 ‘문학신문’에 발표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 ‘등고지’다.이 시를 포함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조국의 바다여’ 등 시 3편과 ‘문학 신문 편집국 앞’ ‘관평의 양’ ‘가츠리섬을 그리워하실 형에게’ ‘체코슬로바키야 산문 문학 소묘’ 등 산문 4편이 최동호(고려대), 이동순(영남대), 김문주(영남대) 교수에 의해 대거 발굴됐다.

최 교수 등은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 발굴한 작품을 수록한 ‘백석문학전집1ㆍ2’(서정시학)를 출간, 20일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문학전집 발간은 백석 문학 텍스트의 정본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문학전집에는 그동안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백석이 번역한 숄로호프의 장편 ‘고요한 돈’도 포함됐다. 또 1957년 북한 조선작가동맹출판사에서 펴낸 백석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 영인본도 함께 출간된다. 시와 산문은 종이책으로, 번역시, 번역소설, 동화시집은 e북으로 나온다.

백석은 1912년 7월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95년 1월 삼수 관평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30년 19세의 나이로 등단,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하며 혜성처럼 문단에 나온 그는 1958년 북한 공산당의 ‘붉은 편지’ 사건 이후 1959년 1월 삼수 관평리에 자원 형식으로 추방된다. 백석은 벽촌에서 양치기로 일하며, ‘붉은 작가’로의 변신을 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1962년 5월 ‘나루터’를 끝으로 작품활동을 마감한다. 1995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백석은 양치기로 지냈다.

백석은 현재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안도현 시인 등 ‘백석 계보’로 스스로를 부르는 시인들이 여럿이다.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최근 백석 시 열풍을 ‘북방정서에의 향수’로 해석한다.

백석의 시에는 평안도 지방의 토속어와 습속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묘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최동호 교수는 “이번에 정본화 작업을 하면서 ‘집게네 네형제’(1957년)에 앞서 ‘지게게네 네형제’(1956년)라는 시가 발표된 걸 알았는데,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걸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후에 발표된 ‘집게네~’에는 남의 것을 흉내내면 안된다는 중요한 철학적ㆍ사상적 배경이 들어있는데, 이 시기에 주체사상이 확립된 것으로 본다.

새로 발굴된 시 ‘조국의 바다여’(‘문학신문’ 1962. 4.10)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 1959년 관평리 양치기로 숙청(?)된 백석이 복권을 바라며 ‘붉은 작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 쓴 시로 보인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새로 발굴된 산문 ‘관평의 양’과 ‘문학 신문 편집국 앞’ 역시 관평리 양치기 생활을 보고하며 붉은 작가로의 거듭남을 보여주려 애쓴 작품. 최 교수는 산문은 백석의 북한의 삶을 조명하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김문주 영남대 교수는 이번 전집에 포함된 번역소설 ‘고요한 돈1’(1949년), ‘고요한 돈2’(1950년)에 주목했다. 자유롭지 못한 북한 사회에서 백석이 어떻게 문학을 펼칠 수 있었는지 의문의 한가운데에 번역이 자리한다는 얘기다. 백석은 북한 문단의 일대사건인 아동문학논쟁에서 러시아 문학평론을 인용하며 아동문학은 창의적ㆍ유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번역과 문학행위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백석의 또 다른 번역소설 ‘테스’는 출간기록만 있을 뿐 발굴되지 않았다.

최 교수는 “지금까지 백석 연구는 ‘사슴’에 국한시키거나 광복 이전까지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이번 발굴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며 “남과 북의 분단 등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반드시 넘어서야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비평문학회는 작가회의, 대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오는 30일 오후 1시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누리관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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